홍준기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무남독녀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할아버지 아래서 홀로 자란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출가 후 딸만 넷을 낳고 남편과 사별했다. 아들 하나가 소원이었던 어머니는 재가하여 아들만 내리 넷을 낳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었던 건 '나 아니면 안된다!'였다.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는 남편의 벌이로는 자신의 '원죄'인 아들들을 가르친다는 건 어림도 없었기에 '나 아니면 안된다!'며 세상에 뛰어들었다. 서문동에서 5원짜리 찐빵을 팔고, 성북구 윤 보좌관 집에서 (당시 호칭으로) 식모살이도 했다. 어머니의 이런 오기(傲氣)는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과 희생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반면 이와는 정반대의 '나 아니면 안된다!'가 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선거판에서 더욱 눈에 띈다. 어찌 보면 '지겹기도 한' 선거가 거의 매년 치러진다. 후보들은 누구나 "그 좋은 자리에는 내가 딱이야!"라며 '나 아니면 안된다!'고 외친다. 어머니의 생각과 똑같은 말인데, 뜻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20여 년 전, 교육자치 초창기에 교육위원의 세비(보수)를 놓고 언론인들과의 '소주잔 토론'이 있었다. 원래 소주잔 토론은 시간이 좀 지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간덩이가 붓고 목소리도 커진다. 목소리 큰 나는 '무보수 명예직'을 주장했다. 하지만 "무보수라면 그걸 누가 하겠느냐?"는 반론이 있었다.

내 목소리가 더 커졌다. "충북에 현직 교장만도 500명이다. 그 중에는 무보수로 헌신 봉사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이건 교육계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특성일 수도 있고 긍지일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가 '경로당' 운운하면서 소주잔 토론은 허망한 안줏거리로 끝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만일, 정말 만에 하나다. 국회의원이건 지방의원이건 모두 명예직으로 한다면 어떨까?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경제가 침체되며 사회가 불안정하고 국민이 불행해질까?

누가 명예를 얻는 게 배가 아파서도 아니요, 세비가 아까워서도 아니다. 희생이나 봉사심보다는 욕심과 아집이 앞서는 데 대한 서글픔 때문이다. 민주주의에는 인내와 절차가 필요하고 비용도 든다고 한다. 그러나 '돈선거' 없앤다는 선거공영제에 드는 돈은 너무 비싸고 아깝다. 동네일꾼을 뽑는데 중앙에서 간섭하는 건 힘 가진 자의 횡포일 뿐 진짜 자치라고 말하기 어렵다.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투표(해야)하는 '깜깜이' 교육감선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저 혼자 잘난 줄 아는 왕년의 가수왕 박중훈에게 희생심 많은 매니저 안성기가 말한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이 말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도 빛나는 별이 많다. 모든 일엔 상대가 있는 법이다. 여(與)가 있어서 야(野)도 있고, 야가 있어야 여도 있다. 그런데 여나 야나 자신들의 과거 언행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조석(朝夕)과 음양(陰陽)은 때가 되면 바뀐다. 객쩍은 얘기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 현판을 의사당에 걸어 놓으면 어떨까 싶다.

만용과 똥배짱으로 나섰다가 땅을 치며 후회한 사람이 적지 않다. 한번쯤 나는 '깜'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는 그 용기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승리는 거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