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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말로 “일본 가라앉으면 백제관음상 구할 것”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9 나라(奈良)의 백제관음]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8년 05월 29일 화요일 제7면     승인시간 : 2018년 05월 28일 20시 06분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9 나라(奈良)의 백제관음]
7세기 제작 일본 호류사 소장, 1698년 ‘백제국 도래’ 기록
앙드레 말로 인터뷰로 각광, 완벽한 동양의 정신미 표현

▲ 호류사 백제관음얼굴
목조. 높이 209㎝. 아스카시대(飛鳥時代). 7세기 일본호류사(法隆寺).

일본에 어떤 저명한 소설가가 외국에 다니다가 일본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을 들으면 "일본에 백제관음이 있는 것을 모르느냐"하고 혼내 줬다고 했다. 앙드레 말로가 일본에 갔을 때 기자들이 이렇게 물었다. "일본이 바다 속으로 갈아 앉는다할 때에 당신이 하나만 들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잡겠는가." 말로가 "백제관음상"이다 그랬다. 그래서 단번에 세계가 놀랐다. 백제관음상이 일약 일본최고의 보물이 된 것이다.

뒷날 나라(奈良) 호류사(法隆寺) 경내에 백제관음당(百濟觀音堂)을 짓고 높은 원형의 방을 만들고 그 방 한가운데에 높은 대좌를 만들고 그 목조 관음상을 높이 올려놓았다. 최고의 경의를 표해서 대접을 한 것이다. 로마 베드로대성당의 피에타 상처럼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비너스상처럼 미의 황제로 그렇게 모셔졌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더 큰 방을 만들어 모셔야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를 숭상하는 나라의 얼굴에 걸맞게 말이다. 그게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 호류사 백제관음입상
기록에 보면 1698년(江戶時代)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이란 이름으로 ‘백제국에서 도래(渡來)’라는 기록이 있고 1917년 호류사 기록에서 처음 ‘백제관음’으로 표기가 되었다. 천 수 백년간 주소지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지금에 와서야 미의 상징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자비의 화신. 초인적인 풍모. 청정하고 신비적인 미소. 유려한 옷주름살의 곡선. 부조(浮彫)적인데서 탈피한 공간조형을 이룩하고 불가사의하고 완벽한 동양의 정신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여러 학자 예술가들이 백제관음에 대해서 찬미한 기록을 찾아 적은 것이다.

그 옛날 백제의 위대한 예술가의 넋이 살아서 이역(異域)땅을 빛내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유려한 밸런스. 위대한 영혼을 담고 있는 거룩한 얼굴. 그 깊은 미소는 또 무슨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일까. 이 목조관음보살조각은 1400년 전 화려찬란한 색깔로 입혀져서 장엄한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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