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전 대결 린드베리, 느린 편이지만 그게 패인은 아녜요"
올해 US오픈과 한국오픈 우승 목표…메이저 승수 더 쌓겠다

▲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박인비(30)가 20일 오후 강원 라데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승 후 부상으로 받은 굴삭기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5.20
    yangdoo@yna.co.kr
▲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박인비(30)가 20일 오후 강원 라데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승 후 부상으로 받은 굴삭기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5.20 yangdoo@yna.co.kr
세계 1위 복귀 박인비 "골프와 인생의 조화 이뤄가는 중이죠"

"연장전 대결 린드베리, 느린 편이지만 그게 패인은 아녜요"

올해 US오픈과 한국오픈 우승 목표…메이저 승수 더 쌓겠다


(성남=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골프 여제' 박인비(30)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이후 내리막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부상 때문에 일찍 시즌을 마감했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우승도 2017년 3월 HSBC 챔피언스 대회가 유일했다.

주위에서는 '세계 랭킹 1위에 커리어 그랜드 슬램, 올림픽 금메달 등 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뤘으니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나이도 30대에 접어든 박인비가 곧 은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2018시즌 들어 박인비는 '제2의 전성기'라는 평을 들으며 거짓말처럼 다시 세계 정상급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3월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했고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연장 접전 끝에 준우승했다.

4월 LA오픈에서도 준우승하며 2015년 10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또 지난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대회도 제패, 국내 투어에서 첫 우승의 기쁨도 누렸다.

US오픈 출전을 위해 26일 미국으로 떠난 박인비는 출국 전 성남시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세계 1위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며 "부상 때문에 공백기도 길었고, 경기 감각을 찾는 시간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마 그렇게 크게 욕심내지 않아서 다시 1위가 됐나 보다"라고 말했다.

올해 LPGA 투어 7개 대회, KLPGA 투어 1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2회, 준우승 2회의 성적을 낸 그는 "여유 있게 생각하고, 저 자신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준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세계 1위는 생각도 못 했고, 신경도 안 썼는데 선물처럼 다가온 일이 됐다"고 웃어 보였다.

박인비는 "그래도 1위를 다시 하니까 좋기는 좋더라"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내가 이른 시일 내에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의 경기력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주위의 수군거림처럼 은퇴를 실제로 생각하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제가 아마 은퇴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선수 중 하나일 것"이라며 "거의 해마다 은퇴 생각을 많이 하는데 특히 부상이 겹쳤던 최근 2년 사이에는 골프 선수로도 적지 않은 나이였다 보니 힘들기도 했고, 은퇴 생각도 그만큼 더 많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2016년과 2017년에 부상 때문에 일찍 시즌을 마감한 박인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 생활도 나름대로 여유가 있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예전에는 꿈에서도 골프를 칠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계속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상이 생기고, 쉬게 되면서 이제 쉬어가도 괜찮다는 여유가 생겼다"며 "부상 이후 다시 돌아와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자신감도 얻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로서 골프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거나 결과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했다.

박인비는 "사실 저는 30대 나이에 골프를 안 치고 있을 줄 알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골프 인생은 제게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선수로서 결과에 여유를 갖는 순간 프로페셔널리즘도 잃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좀 더 설명하자면 프로페셔널리즘을 살리면서 그 안에서 여유를 찾는 중"이라며 "선수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아예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제 삶의 일부인 골프를 제 인생과 잘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인생에서 골프가 100이면 너무 힘들다"며 "90, 80, 70 순으로 골프를 제 인생에서 점점 빼 나가다가 그게 0이 되면 그때 은퇴하면 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우선 당장의 목표로는 31일 개막하는 US오픈과 6월 한국여자오픈이라고 밝혔다.

박인비는 "한국여자오픈은 제가 아마추어 시절 이후 처음 출전하는 대회"라며 "외국에서 메이저 대회를 여러 번 우승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내셔널 타이틀이 없어서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속 도전하고 싶은 대회"라고 설명했다.

2008년과 2013년 US오픈을 제패한 그는 "이 대회는 해마다 가장 기다려지는 대회"라며 "내가 왜 골프를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대회가 US오픈이라고 할 정도로 골프 선수로서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라고 말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에 대한 논란을 낳았던 에비앙 챔피언십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에비앙에서 다시 우승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도 많이 하신다"며 "물론 메이저 대회기 때문에 우승하고 싶지만 코스가 US오픈보다 제게는 힘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에비앙 챔피언십은 2013년부터 메이저 대회로 승격했는데 박인비는 메이저 승격 이전인 2012년에 우승했다.

3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였던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는 페르닐라 린드베리(스웨덴)를 상대로 1박 2일 연장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했다.

국내 팬들은 '린드베리가 지나친 슬로 플레이를 하면서 박인비의 경기 리듬을 방해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인비는 "그 선수가 슬로 플레이어 중 한 명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투어에 그런 선수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같이 경기를 하면서 무던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는 순간 제가 지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도 경기에 일부인 데다 그것이 제 패배 원인은 아니다"라고 자평했다.

올해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국내 대회 우승을 달성한 그는 "앞으로 메이저 승수를 더 쌓는 것이 다음 목표"라며 "부상 없이 삶과 골프 밸런스를 맞추면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도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2016년 리우올림픽이 끝난 뒤 데려온 반려견 '리오'와 함께 모처럼 시간을 보낸 박인비는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앞으로 미래 계획을 살짝 공개했다.

그는 "팬들이 '골프를 40, 50살까지 오래 하라'고 격려해주시면서 동시에 '2세는 언제 가질 거냐'고 물어보신다"며 "골프를 오래 하라는 건지, 빨리 아이를 낳으라는 건지 헷갈린다"고 웃었다.

2014년 7살 연상의 남기협 씨와 결혼한 박인비는 "30대 초반이라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들이 아이를 갖는 나이에 저도 평범하게 하고 싶다. 앞으로 확실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때까지 시간이 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윙 코치를 겸하고 있는 남기협 씨에 대해서도 "클럽 선택 같은 부분은 전적으로 남편을 믿는다"며 "와이프가 하는 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골프 코치까지 잘해주니 더할 나위 없는 천생연분"이라고 '남편 자랑'도 열심히 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좌우명'을 묻자 "때때로 많이 바뀌는 편인데 요즘은 '남 신경 쓰지 말고 내 맘대로 살자'"라고 소개하며 "그동안 주위 시선을 너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서 소신껏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골프 여제'라는 말에 실린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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