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중국 안휘성 이백문화원경구의 이백 상
꽃나무 사이 한 동이 술을/ 친구 없이 혼자 마신다./ 잔을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친구가 셋일세 (……) /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리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는 마구 흔들린다/ 깨어서는 함께 서로 즐기지만/ 취한 다음 노곤해지면 제각기 흩어진다 / 그들과 사심없는 친구로 맺어지길 원한다/ 언젠가 저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 노닐겠지.

- 이백, '월하독작'(月下獨酌) 부분

아름다운 봄날 밤, 술 한 병 들고 꽃밭 사이로 들어간다. 독작의 시간, 함께 벗하여 술잔을 주고받을 이 없으니 적막하지만 이제 외로움을 느낄 경지는 넘어선 듯하다. 술잔을 들어 달과 달빛에 어리는 내 그림자를 부른다. 그럭저럭 셋이 모인 셈. 달은 늘 거기 있는 미더운 존재지만 자발적인 감성이 없으니 달빛 아래 이런 분위기를 더불어 즐길 수 없고 그림자 또한 나의 움직임대로 옮아가는 수동적인 침묵의 분신이기는 하다. 유럽 낭만주의의 원형을 천백년 가까이 앞서 소박하게 구현한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년).

달과 그림자를 벗으로 삼아 취흥을 돋구려는 시인의 쓸쓸하면서도 화려한 봄밤 정경에 동참한다. 꽃이 지고나면 꽃보다 더 좋다는 녹음이 우거지겠지만 어찌 꽃의 화사한 감각에 비할까. 시각, 후각, 촉각, 청각 그리고 미각이 비로소 제대로 어우러져 봄밤의 독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린다, 내가 춤을 추면 그제야 달은 마구 흔들거린다. 술에 취하면 이윽고 각기 흩어져야 하는 시간. 술친구의 영원한 숙명, 본질적 행보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들과는 변함없이 사심 없는 친구로 맺어지기를 원하고 언젠가는 저 머나먼 은하수에서도 만나 교류하기를 기대한다.

이백의 유유자적 낭만적인 감성과 의식은 새삼 깊은 함의를 던진다. 청년층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독작, 이른바 혼술이 유행하고 더구나 주폭과 술로 인한 여러 잡음이 불거지는 이즈음 이 짧은 시 한 편이 시사하는 내면의 절제와 여유는 인상적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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