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정신 발달 과정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세 단계로 구분하면서, 사람은 ‘망각과 창조’를 의미하는 어린아이 단계로 발전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낙타는 잘 참고 잘 견디고 순종적인 동물이지만 짐을 기꺼이 지는 것은 착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다. 이렇게 낙타처럼 맨 날 무릎을 꿇고 살면 언젠가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분노할 수 있다.

최근 회자되는 갑질은 낙타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인간의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지녀야 하는데 이것이 없기에 자신이 억압 받은 만큼 폭발한 것이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갑질, 장군의 아내가 공관병에게 주는 굴욕감, 땅콩 회항 사건은 모두 낙타 단계의 정신을 보여 준 것이다. 문제는 이런 낙타의 정신이 한 사람에게 국한 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나도 낙타처럼 잘 참고 살았기에 나도 참은 만큼 갑처럼 행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차요원은 시민에게 무릎을 끊고 사과를 해야 했으며, 직장에서는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동료를 가차없이 욕보이고 있다. 굴욕감을 통해 권위를 세우는 내리 갑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이다.

삶의 본질은 나와 외부 세계와의 정보 처리다. 갑질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질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내 유전자가 형질 변경되고, 너도 나도 갑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후성유전이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최근 후생유전학이라는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태어난 후(후성: 後成) 식이, 환경에 변화를 주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어 기질과 질병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 후성유전학이다. 여왕벌과 일벌은 유전자가 같다. 하지만 운 좋게 로열젤리를 듬뿍 먹은 애벌레는 유전자 변형 (DNA 메틸화 억제)되어 여왕벌이 되고, 로열젤리를 먹지 않으면 메틸화가 활성화되어 애벌레는 일벌이 된다. 후성유전학은 '정해진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하기 나름이다'라는 열린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갑질과 분노 같은 좋지 않은 경험도 반복되면 후손들에게 더 나쁜 유전자로 전달 될 수 있다.

니체는 후성유전이라는 것을 몰랐지만 철학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 보다 기린이 높은 나무 가지의 잎을 먹기 위해 무단히 힘쓰면서 목이 길어진다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더 찬양하면서 인간정신의 변화와 발달을 강조했다. 낙타의 분노와 같은 저급단계의 정신을 극복한다면 인간은 어린아이와 같은 높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 단계의 정신은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자, 편견과 오만을 넘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창출하는 사람이다. 몸이 전하는 목소리를 겸허하게 들으라는 니체나, 유전자는 너의 행동을 알고 있다는 후성유전학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낙타의 정신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쓸데없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살 것인지는 자명하게 된다. 과학이 윤리를 이야기 할 수 없지만 후성유전학은 어쩌면 우리가 왜 올바르게, 장엄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답 일 수 있다.

한국은 이제 3만불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창조력과 기술력은 세계 최상위다. 하지만 관용지수는 OECD국가 중 최하위로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확실한 3만불 시대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기술력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다. 관용의 문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들 마음에 낙타 한 마리 키우고 있다면 3만불 시대에서는 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갑질과 분노를 망각하는 관용의 문화는 장엄한 삶을 사는 한국인의 문화, 가풍, 국민성이라는 형질 획득 자산을 후성유전으로 후대에 전하게 될 것이다. 낙타 한 마리 키우고 계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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