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호 대전본사 편집부장

5월 '가정의 달'도 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날'이 많아서 가정의 달인지, '가정의 달'이라 날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5월은 이런저런 기념일이 참 많기도 하다. 1일 근로자의 날로 시작해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성년의 날(21일) 등이 있다. 또 가정의 달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유권자의 날(10일), 5·18민주화운동기념일(18일), 발명의 날(19일), 세계인의 날(20일), 부처님 오신 날(22일·음력 4월 8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도 5월 중 기념일이다.

필자는 미혼의 1인 가구이기 때문에 가정의 달이 조금 덜 바쁘지만, 그래도 챙겨야할 어린이(조카들)와 어머니가 있으며 초·중·고·대학교 시절 만난 수많은 은사님들이 계시다. 물론 그 중 제대로 챙긴 건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충실했든 그렇지 못했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나 주변의 움직임에 따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가정의 달이라 그런지 아니면 가끔 오는 그런 시기여서 인지 필자의 5월은 평소보다는 조금 더 많이 '선친(先親)'을 떠올린 시기였다.

아버지는 2010년 봄 너무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1남 2녀 중 막내였는데,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는 상주(喪主)가 됐다. 상을 치르며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전해야 하는 부고(赴古)였다. 대부분 일면식도 없는 분들에게 전화를 해 내 신원을 밝히고 '그런 소식'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부친상에 있어 필자에게 가장 강한 기억은 '염(殮·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로 쌈)'이다. 염을 하며 손으로 감싼 아버지의 얼굴은 살아오면서 느껴본 그 어느 것보다 차가웠다. 하지만 두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은 함께하면서 본 그것 가운데 가장 평온했다, 그 '이상한 공존'은 아직도 필자에게 깊이 남아 있다.

선친은 필자가 기자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하지만 외고 진학 때도,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할 때도, 군 입대 시기도 그랬듯 나는 통보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근무하시던 곳에 짐 정리를 하러 갔고, 거기서 기사 스크랩북을 발견했다. 슬플 정도로 꼼꼼한 그 노트는 필자에게 참 많은 생각을 주었다.

'염'할 때 느낀 이상한 공존처럼 요즘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대부분 내 마음대로 결정했는데 돌아가신 이후에 선택의 순간이나 고민이 생기면 왜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일까.

얼마 전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하러 갔다 소주를 한 잔 나누며 이런 얘기를 해줬다. "부고(赴古) 보다 무서운 것은 부재(不在)야." 그렇다. 어떤 사람의 빈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절대 다시 채울 수 없는 것도 있다.

트로트 중에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하는 노래가 있다. 굳이 어려운 말로 하자면 '풍수지탄(風樹之歎·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어버이날 혹은 스승의 날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그곳에 그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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