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녀석들' 서원부터 '무법변호사' 기성까지
"실제 지명 사용보다 더 과감한 연출 가능"

한국 드라마 속 가상도시 고담시티들

'나쁜녀석들' 서원부터 '무법변호사' 기성까지

"실제 지명 사용보다 더 과감한 연출 가능"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배트맨이 활약하는 DC코믹스 속 가상 도시 '고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범죄가 발생한다. 마피아부터 야쿠자까지 온갖 거물급 흉악범이 몰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드라마에서도 고담 못지않은 다양한 범죄도시들을 만날 수 있다.

트렌디한 장르극들을 선보이는 OCN 마니아들이라면 '서원'이라는 지명이 익숙할 것이다.

DC코믹스에서 고담이 여러 작품에 등장하듯 서원시도 '나쁜녀석들' 시리즈와 '38사기동대'에 함께 배경으로 등장, 두 작품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올 초 종영한 '나쁜 녀석들2'(악의 도시)에서 서원시는 몇 년 전 아시안 게임도 개최했을 정도로 번성한 도시지만, 극빈층도 많고 유흥가에서는 마약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곳으로 묘사됐다.

경찰들은 조직폭력배들의 온갖 악행에 정면돌파하기보다는 모른 척 눈감아준다. 시장인 배상도(송영창 분)와 지역 검사장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가 그들의 뒤를 봐주는 덕분이다.


2016년 방송한 '38사기동대'에서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고액 탈세자이자 다단계 사기범에게 휘둘린 시장이 물러났는데도 서원시는 여전히 범죄도시다. '나쁜 녀석들2'에서도 악인들이 퇴장했지만, 그게 악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악이 자리 잡은 곳에서는 언제든 썩은 곁가지가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OCN 작품들은 보여준다.

과장된 만화 같기도 하지만, 극이 현실감을 지닌 까닭은 서원이라는 도시가 꽤 구체적으로 묘사된 덕분이다. 작품들 속 서원시는 부촌인 인북동, 가장 낙후한 인서동, 조용한 인중동, 조폭들이 유흥가를 접수한 인남동, 재개발 단지인 마석동 등 하위 행정구역들도 실감 나게 담겼다.


시즌2 방송을 앞둔 OCN '보이스'는 '성운'이란 가상 도시가 배경이다.

성운시 역시 살인부터 강간까지 각종 강력범죄가 판을 쳐 전국에서 흉악범죄가 가장 잦은 곳이지만 성운지방경찰청의 범죄 검거율은 전국에서 꼴찌다. 그러나 남다른 청각 능력이 있는 강권주(이하나)가 112신고센터장으로 오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OCN의 기운을 이어받아 다양한 장르극을 선보이는 tvN에서도 가상 지명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6년작 '시그널' 속 인주시와 최근 시청률 상승세를 탄 '무법변호사' 속 기성시가 대표적이다.


'시그널' 인주는 김은희 작가의 다른 작품 '유령'(2012, SBS)에서도 등장했다. '유령' 속 인주는 기업 주도 조직 범죄가 판치는 곳으로 묘사됐고, '시그널'에서는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연쇄살인, 성폭행들이 만연한 도시로 그려졌다.

'무법변호사' 속 기성 역시 이중적인 얼굴을 지닌 향판(지역판사) 최문숙(이혜영)부터 극악무도한 조폭 안오주(최민식)까지 위아래 할 것 없이 썩은 곳이다. 기성은 문자 그대로는 비단 기(綺)에 성 성(城), 비단 같은 도시지만 반어적이다. 시장, 판사, 기업인, 경찰 등 모두가 악취를 풍긴다는 점에서 '38사기동대'와 '나쁜녀석들' 서원시를 연상케 한다.


이렇듯 범죄를 주요 소재로 하는 장르극들이 가상 도시를 끌어들이는 것은 여러 가지 '편리함' 때문이다.

선과 악 구도가 뚜렷해야 결말에서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극 특성상 제작진은 배경이 되는 사회와 악인들을 가능한 한 악하게 묘사해야 하는데, 실제 지명을 사용했다가는 특정 지역 명예 훼손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한 방송가 관계자는 20일 "실제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 지역 명예 훼손 등 괜히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시청자 역시 폐쇄적인 가상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게 극을 받아들이는 데 편리하다"고 말했다.

영화 '곡성'이 대표적이다. 곡성은 우는 소리 '곡성(哭聲)'이지만, 그 촬영지가 공교롭게도 전남 곡성(谷城)인 까닭에, 전남 곡성 현지에서는 영화가 덧씌운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점에서 만화적 요소를 가미해 극적인 통쾌함을 더하는 최근 장르극에서는 DC코믹스 속 고담 시티를 연상케 하는 가상 지명들은 여러 모로 편리함을 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lisa@yna.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