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영화 ‘축제’ 포스터
#. 호상(護喪) -1

중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향집에 갔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예전과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 사랑채 대청에 갓 또는 두건을 쓴 어른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쭉 둘러앉아 있었고 그 가운데 한 분이 맏손자가 왔느냐며 초상 절차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해주셨다. 나중에 들으니 그 분은 호상(護喪)이라는 직책으로 7일장을 마치고 삼우제가 끝날 때까지 장례 절차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리고 상주인 아버지는 탈상할 때까지 삼베 상복에 두건, 대나무 지팡이에 짚신을 신고 있었다. 문상객이 올 때 마다 "아이고 어이고, 어이어이"하며 곡을 하는 상주들이 몹시 힘들어 보였다. 지금처럼 간소해진 장례 절차에 비해 형식적이고 과도한 낭비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 길 만이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고 불효자식들의 불충을 속죄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 호상(好喪) -2

호상(好喪)은 '복을 누리며 별다른 병치레 없이 오래 산 사람의 상사'라는 사전 정의처럼 장수하시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신 분의 죽음을 일컫는 표현인데 빈소에서 문상을 하며 상주에게 마땅히 달리 건넬 얘기가 없을 경우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의 하나다. 이것도 눈치를 보아가며 머뭇거리면서 건네곤 한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라지만 상(喪)이라는 글자 앞에 좋을 호(好)자를 붙인다는 것이 여간 어렵고 망설여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느 후보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가 "호상당해야 할텐데…"라고 걱정한 SNS상의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문상객도 쓰기 어려운 단어를 이제 50대인 아버지를 둔 자녀의 입장에서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발설한 것이다. 이런 문장이 나오게 된 저간의 과정이나 정치적 입장 그리고 그러한 언사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모두 떠나서 이즈음 대학생들의 언어 표현과 어휘력, 사고와 인식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여 어문계열 선생으로서 민망한 마음이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해 독서가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자유로운 글쓰기 말하기 교육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우리 현실에서 앞으로 또 어떤 적절치 않은 문장이 대중을 의아하게 만들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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