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 학생들 중심 시위 움직임, 대전상업고도 동참
국가기념일 지정위해 민·관 협력, 시민 공감대 확산
지정땐 민주주의 정신 계승·정부 행·재정 지원 기대

▲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범시민추진위원회'는 지난 4월 14일 계족산(장동산림욕장)에서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우리 지역 민주화운동의 효시이자 4.19혁명의 단초가 된 3.8민주의거 기념일에 대해 정부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가졌다. 대전시 제공
이제 남은 것은 대전의 3·8민주의거 하나 뿐이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항해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자유와 민주, 정의를 수호하고자 불의에 항거했던 민주의거다. 대구 2·28민주화운동, 마산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을 촉발시키는 단초가 됐으며 우리나라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같은 중요성에도 3·8민주의거는 그간 정치·사회적인 시대상황과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앞서 마산3·15의거가 2010년, 대구2·28민주화운동이 올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과 대비되는 측면이다. 때문에 늦었지만 대전의 3·8민주의거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뜨겁게 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국가기념일 지정을 넘어 당시 충청의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후손에 잇는다는 데 중요성이 있다.

▲ ‘3.8민주의거 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 범시민추진위원회가 지난 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시청 중회의실에서 15개 단체 대표가 모인 가운데 발족식을 가졌다. 대전시 제공
◆충청권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자 4·19혁명의 단초로


14일 대전시, 대전세종연구원 등에 따르면 3·8민주의거는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에 불만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구 2·28학생시위에 자극받아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고등학생의 시위를 보고 대전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충청도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학생들이었기에 실제 시위로 이어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전고 학생들은 8일에 열리는 민주당 선거유세에 시민이 많이 모이는만큼 호응과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전교생이 참여하는 시위를 기획했다. 그러나 시위를 기획한 당일 학교 당국이 시위계획을 알아차리고 수업 도중 학교호국단 간부를 교무실로 호출, 학교 인근 교장 관사에 연금하며 시위를 중지하라고 압박했다.

자칫 시위의 불씨가 꺼질 수도 있었지만 민주화 의지에 학생들은 교장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관사를 빠져나와 시위를 이어나갔다. 이날 학생 1000여명이 학교 담을 넘어 결의문을 낭독한 후 시위에 들어갔다. 당시 결의문 내용은 이렇다. ‘학원의 정치도구화를 배격한다’, ‘자유로운 학생 동태를 감시 말라’, ‘서울신문 강제구독을 단호히 배격한다’,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한 학원에 여하한 사회적 세력의 침투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의 거사는 오로지 정의감과 자발적 의사에서 나온 것임을 밝힌다’, ‘오늘을 기하여 거행함은 다만 학생들의 사기가 왕성한 때문이다’, ‘우리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동맹휴학도 불사한다’… 학생들은 위의 결의문 구호를 외치면서 민주당 선거유세장인 공설운동장을 향해 행진했으나 이미 무장한 경찰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학생들을 해산시키려 곤봉과 장총 개머리판 등으로 학생의 가슴과 머리, 팔과 다리 등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학생들은 완강히 대항했지만 경찰의 진압에 대열이 흩어졌고 이 과정에서 수십여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이같은 고난에도 학생들은 꺾이지 않았다. 시위대들은 경찰 제지를 받으면서 여러 갈래로 나뉘었지만 애국가를 부르면서 대전역이나 도청방향으로 시위의 물결을 이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학생들에 박수를 쳐주거나 경찰의 동정을 알려주는 식으로 시위를 적극 지원하고 지지해줬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경찰의 약속을 받고서야 학교로 복귀했다.

3·8민주의거는 가깝게는 3·10 대전상고의 시위, 이후에는 4·19혁명의 불씨가 됐다. 대전고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난 이틀 뒤인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들도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을 규탄하는 시위를 일으켰다. 앞서 대전고 학생들이 8일 시위를 계획하면서 참여의향을 타진했었는데 당시에는 학생 의견을 모으기에 시간적으로 부족해 참여하지 못했다.

대전상고 학생들은 학원의 자유와 면학분위기 보장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했고 8일 시위와 마찬가지로 시위 과정에서 수십여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대전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어난 시위에 힘입어 4월 19일에는 전국에서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을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투쟁 끝에 4·19 혁명 이후 이승만 정권은 물러났고 잃었던 민주주의도 되찾을 수 있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도 국가기념일로” 민·관 뜨거운 의지

대전의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려는 범시민적인 움직임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미 2002년에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고 2009년 대전시에서는 3·8민주의거 기념일 제정 조례를 공포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을 돕고 있다. 또 2013년 3·8민주의거를 민주화운동 범위에 포함시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같은해 정부에서 이를 법령으로 공포했다. 지난해말 3·8민주의거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촉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으며 주무부서인 국가보훈처의 협의 및 제안절차도 이뤄졌다. 현재 행정안전부 검토 단계로 국무위원회 의결을 거치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시민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지역 15개 단체가 모여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하는 범시민추진위원회가 지난달 26일 발족식을 가졌다. 범시민추진위는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그간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우리 지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제대로 계승하기 위해 이날 출범했다.

범시민추진위원회는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결의대회, 서명 운동 전개, 열린 포럼, 음악회 등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김용재 범시민추진위원장은 "3·8민주의거는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뜻깊은 민주화운동인데 그동안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이라도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시도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시는 현재 3·8기념탑이 위치한 둔지미공원을 '3·8민주둔지미공원'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 중이다. 또 시민공감대를 모으는 것을 비롯해 정치권 및 충청권과의 공조 체계 구축에도 힘 쏟고 있다. 3·8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대전 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3·8민주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 정부 차원의 행·재정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정부 주관의 기념행사 추진, 각종 기념사 등의 정부 지원이 가능해 향후 기념관 건립 추진에도 탄력이 붙는다.

대전시 관계자는 “3·8민주의거는 대전의 자부심으로서 조속히 국가기념일로 지정돼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정신을 계승해 시민이 중심이 되는 대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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