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건국 100주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좌파 대통령의 역사읽기에 편승해서 일어나는 예견된 현상이다. 대통령은 금년도 3·1절 경축사에서 몇 가지 우려스런 발언을 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뤄낸 결과입니다",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등이 그 한 예다.

대통령의 발언은 파괴력을 갖는다.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시로 전 정권이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또 초등학교 6학년 사회교과서 내용도 좌파 정권의 입맛에 부합하도록 대폭 수정되었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은 '8·15광복과 대한민국 수립'이 '8·15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바뀐 점이다. 영혼 부재(不在)의 교육부는 이제 대놓고 '1919년 대한민국 건국'을 가르칠 심산이다. 그 또한 적폐다. 문제는 8·15광복과 건국에 관한 대통령 발언에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8·15광복의 결정적 계기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미국의 원자폭탄(리틀보이, 팻맨)과 그로 인한 일제의 패망이었다.

대통령은 김구선생이 일제의 항복소식을 전해 듣고 했던 말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왜적이 항복했다고! 이는 희소식이 아니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일이다. 애써 준비한 참전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 그는 대일전(對日戰)에서 기여한 게 별로 없는 우리의 국제적 발언권이 미약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미·소 강대국의 정치적 흥정에 따라 결정된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건국 100주년 발언도 위험한 주장이다. 더욱이 좌파 정권은 올해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 관련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민의를 존중하는 촛불혁명의 주체라고 떠드는 정권의 행태치고는 너무나도 치졸하고 반역사적이다.

망국 상황에서 풍찬노숙하며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독립투쟁을 했던 선열들의 존재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이며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8·15광복을 가능하게 한 일제 패망의 주역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며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임은 명백한 팩트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왜 우리 선열들은 8·15해방 때까지 독립투쟁을 했는가, 혹시 독립투사들을 분리주의자나 테러리스트로 비하하는 것은 아닌가? 또 1919년과 1945년 사이에 발간된 세계지도에서 한반도를 KOREA라고 표기된 지도가 있는가? 동기간에 우리 국민이 일제에 '공출'이란 명목으로 세금을 내고, 학병·정신대·위안부로 강제징용을 당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 더욱이 1919년에 건립된 대한민국이 8·15해방 이후 3년간의 미(美)군정을 용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임시정부와 정부는 격(格)이 다르며, 국가만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더 이상의 자해(自害)행위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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