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6 관촉사 관음보살입상]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6 관촉사 관음보살입상]
고려시대 37년 걸려 완성, 국내 가장 큰 석조불상 국보, 안정감 주는 역비례 축조

고려. 목종 9년(1006년). 높이 1812㎝. 국보.

은진미륵이라 알려졌던 논산 관촉사 마당에 서 있는 이 관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불상이다. 고려 광종 19년 (968년)에 시작해서 목종 9년(1006년)에 완성했다하니 37년이나 걸려서 만든 것이다. 최근 문화재청에 의해서 국보로 승격되는 쾌거가 있었다. 실로 천 년 만에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게 된 것이 아닌가.

2007년 이 석상이 만들어지고 천년되는 해라해서 제자의 차를 얻어 타고 관촉사를 찾았다. 그날의 소감을 청풍이라는 잡지에다 실으면서 차제에 국보반열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적은 바 있었다. ‘나는 지금 은진관음상을 거대한 조형물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이목구비의 만듦새하며 두 손의 오묘한 조형적 처리하며 안정감 있는 역비례의 축조하며 이모저모 그 능란한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현대 조각의 어떤 거장이라 할지라도 저처럼 수려한 손은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 대단한 미적 감각을 발휘한 걸출한 예술품으로 보인다.’ 그러고서 10년을 기다렸는데 정말로 국보반열에 오른 것 이었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산마애삼존불을 깎고서 400년 뒤에 논산 땅에 관음상을 만든 것인데 그 나라와 그 깎은 사람은 달랐지만 삼존불 속의 관음의 얼굴과 관촉사관음의 얼굴을 잘 보면 너무도 많이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미소가 닮아있고 이목구비를 형상화해서 포개보면 영락없이 한 사람의 얼굴로 보일 것이다. 서산 관음의 얼굴이 400년 뒤에 논산관음의 얼굴로 나타난 것 같다는 말이다.

또 이상한 것은 중국이나 서역의 불상과 달리 완전히 정형화 된 한국인의 얼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요새말로하면 토착화(土着化)했다는 말인데 어째서 백제 땅에서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촉사 안내판에 보면 비례가 이상하다고 써 놓았는데 팔만대장경을 만든 나라에서 고승 대덕이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무엇인들 몰랐겠는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은진관촉사에만 있는 가장 한국적인 형상. 큰 세상을 다 포용하고 관촉사관음보살은 오늘도 또 여전히 거기에 서 있다.

<서울대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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