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혁 ETRI 무인자율운행연구그룹 선임연구원
<젊은 과학포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은 정교하게 연주하면 대중의 찬사를 얻는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좀 다르다. 기존 인지하는 기술적 문제를 풀어내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학계에서 좋은 연구란 음악의 연주와 달라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창의적인 음악을 작곡하듯 연구해 감동을 이끌어 내야만 엄지척을 받는다.

필자가 전공한 '레이더 신호처리' 분야도 역사와 전통이 클래식 음악과 비슷하다. 세계 1차 대전 시절부터 국방 분야에 적용되면서 부터 누적된 지식과 연구 성과 또한 방대하다. 학창시절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논문을 써보자고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문제를 찾아다니며 느낀 점은 비애뿐 이었다. 마치 내가 더 이상 기여를 할 수 없는 학문처럼 다가왔다. 거대한 벽 앞에 선 작은 난쟁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과학자 뉴턴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섰지만, 평범한 학생이었던 필자는 거인의 어깨에 오르다 거인의 무릎 즈음에서 지쳐버린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주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듯이, 공학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학자로서 인정받거나 논문을 새롭게 써서 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렵지만 누군가는 그 학문을 계속 해나가야만 한다. 거인의 어깨에 오르려는 시도조차 멈춘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그리고 핵심기술 보유 리스트에서 몇 개의 항목을 지워내야만 할 것이다. 레이더 기술은 우리나라 육군, 공군, 해군의 눈이 되어주기도 하고, 시민들에게 날씨 정보를 주기도 하며 자동차, 무인비행기(UAV)의 안전한 운행을 돕기도 하는 중요한 기술이다. 필자는 '레이더 센서' 기술이 앞으로 매우 유망한 기술이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미래에 매우 유망한 기술 임에도 불구, '레이더의 신호처리' 기술은 거의 정점에 와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써 이 분야의 문제를 새로 풀어야 할 일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후배들이 이 분야를 연구해 학술적 기여를 하는 것도 점점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분야는 후배들에게 졸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 분야가 점점 되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신호처리 기술을 연구하던 곳들도 하나 둘, 딥러닝(deep learning), 인공지능(AI) 기술,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등의 분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의 팽배한 성과주의가 불러온 폐단이 아닌가 한다. 대학 석·박사 과정 졸업 요건에는 으레 해외 유명 저널 SCI 몇 건이라는 항목이 차지하고 있다. 거대한 산과 같은 '레이더 신호처리' 분야에서 새로이 이론을 만들고 실험을 해가며 성과를 내기란 더 이상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전공 선택에서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필자도 이러한 현상들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 현상이 비단 필자의 전공인 '레이더 신호처리' 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미래 핵심 기술을 보유하자 부르짖지만, 실제론 최근 유행하는 기술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핵심기초 원천기술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반기술(fundamental technology)이라 생각한다. 핵심기술도 가장 중요한 연구도 기초가 튼튼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산·학·연·관이 '유행'에 현혹되지 않고, 기반 기술을 근본으로 하는 연구 풍토가 자리 잡길 희망해 본다. 이를 통해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분야에서도 자신감을 갖도록 인재가 육성되고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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