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서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전 개막
현대미술·드레스 엮어 사랑·꿈·상처·억압 이야기

▲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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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미술관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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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웨딩드레스 수십 벌이 걸린 까닭은

서울미술관서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전 개막

현대미술·드레스 엮어 사랑·꿈·상처·억압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어둠 속 드레스가 빛을 발한다. 중세 유럽 귀부인이 입지 않았을까 감탄하며 드레스를 들여다보는 순간, 당혹감을 느낀다. 이른바 '택'(Tag·태그) 수백 개를 이어붙여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권력과 계급이 되는 현대사회에서 태그는 종이 이상이다. 상품에서 떨어지는 순간, 곧장 무용한 존재가 된다. 심경보는 버려진 태그들을 일일이 재단하고 바느질해 감쪽같이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2015년작 '클로즈 오브 더 푸어 맨 XI'(Clothes of the poor man XI)은 소비사회와 그 허상, 손으로 하는 노동, 예술과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건드린다.

태그 드레스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걸린 드레스 수십 벌 중 하나다. 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은 올해 전체 전시 주제를 '꿈'으로 정했다. 1일 개막한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는 꿈과 환상을 상징하는 웨딩드레스를 현대미술과 엮은 전시다.

넓이가 2천300㎡인 전시장에서 펼쳐지는 드레스 향연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드레스와 미술품이 어우러진 12개 방에서는 꿈과 낭만뿐 아니라 상처와 억압, 욕망 등을 털어놓는 신부 12명의 사연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류임상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결혼식에만 웨딩드레스를 입고 더는 찾지 않는다는 점과 다들 꿈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막상 이룬 뒤에는 꿈꾼 사실을 잊는다는 점이 연결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 여성들 인생이 대부분 웨딩드레스를 벗은 이후에 가부장 제도 등으로 인해 매우 크게 바뀐다는 점을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순백 드레스와 이웃한 송영욱의 '스트레인저'(2014)는 독나방을 아름다운 나비떼로 오인한 경험에서 출발한 종이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아름다운 기억도 어쩌면 추악하고 두려운 것들로 채워져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대만의 황하이신 회화 '레드 카펫 드림 #5'(2017)는 결혼이라는 '쇼'를 유쾌하게 겨눈다. 지난한 결혼 준비 과정, 인공적인 화장, 인위적으로 연출한 사진, 억지웃음을 한 하객 등을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김병관 '올드 스타 #14'은 얼굴이 뭉개지고 해체된 원더우먼을 통해 남성 중심 시선을 전복하고,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 몸에 키스마크를 새겨 완성한 장지아 '오 마이 마크!'(2017)는 통제된 사회와 위계질서를 비판한다.

이사림 일러스트 '해플리 에버 에프터'(2018), 러시아 사진가 크리스티나 마키바 연작 '드레스를 입은 소녀'(2017)처럼 결혼 기쁨이나 웨딩드레스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작품도 있다.

12명 신부 사연은 현빈·탕웨이 주연 영화 '만추', 윤종신 노래 '너의 결혼식'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빌려온 것이라 전시가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한국 최초 남성 패션디자이너로 2010년 타계한 앙드레김이다.

섹션 '쇼 머스트 고 온'에는 그가 생전에 아꼈던 웨딩드레스 컬렉션과 아카이브 자료가 대거 나왔다. 앙드레김 미공개작으로, 추모 패션쇼 때 공개 계획이 불발된 드레스도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전시는 "패션은 종합예술 세계"라고 말했던 앙드레김을 작가로서 이해하려는 시도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짙은 화장술이나 독특한 화법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게 풍자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묵묵히 작업에 몰두했던 건 자신을 '아티스트'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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