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블랙 어스'·'히틀러의 매니저들'

난 악하지 않다고? 배우지 못한 홀로코스트의 교훈

신간 '블랙 어스'·'히틀러의 매니저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히틀러와 독일 나치는 수많은 희생을 초래했으나 그 비극을 견뎌낸 이들에겐 마르지 않는 교훈의 샘이다.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책이 독일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평범함 속에서 발견한 현대철학의 화두인 '악의 평범성'을 확장하고 변주한다.

신간 '블랙 어스(Black Earth)'(열린책들 펴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550만 명의 유대인과 300만 명의 소련군, 100만 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홀로코스트를 배태한 정치·생태적 환경이 지금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정상적인 우리와는 무관한 미치광이들의 반인륜적 인종주의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작 '폭정'(열린책들 펴냄)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교수다.

인구 증가와 식량 고갈을 걱정했던 히틀러는 지구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 같고, 생존을 위해선 다른 종족을 굴복시키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겼다. 전쟁은 독일 민족의 안위와 번영의 기반이 될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결한 종족 간 투쟁으로 받아들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독일은 18~19세기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후발주자로 참여해 불리했고, 그나마 확보한 식민지마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빼앗겼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 건설을 꿈꿨던 히틀러는 독일에 남은 건 유럽 대륙이라고 생각했고, 유럽을 과거 북아메리카나 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로 만들고자 했다.

유럽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히틀러는 언제든 점유하면 될 비어있는 공간으로 상상하기를 원했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인종주의를 이용했다.

책은 재앙적인 자연재해나 기후환경 변화로 식량난, 식수난 같은 생태적 위기가 초래될 경우 전지구적으로 혹은 국지적으로 히틀러와 유사한 정치적 기획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르완다의 대량학살이나 소말리아의 기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등을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로 든다.

"우리는 히틀러의 지구와 그의 여러 가지 관심사를 공유한다. 우리는 생각만큼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거주 공간을 좋아하며, 정부를 파괴하는 공상에 빠지며, 과학을 모독하며, 대재난을 꿈꾼다. 우리가 전지구적인 음모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히틀러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면 인류를 보전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조행복 옮김. 616쪽. 2만8천원.


또 다른 신간 '히틀러의 매니저들'(울력 펴냄)은 히틀러와 나치 제국을 건설하는 견인차 구실을 했던 6명의 인물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독일 저널리즘 학자로 독일 공영방송 ZDF 현대사 편집국장을 지낸 귀도 크놉이다.

건축가이자 군수 기획자였던 알베르트 슈페어는 나치스의 이데올로기를 건축을 통해 구현했으며, 로켓 개발자인 베른헤어 폰 브라운은 나치의 보복 무기 'V2'를 개발했다.

나치의 최고사령부 작전본부장이었던 알프레트 요들은 히틀러의 군사고문으로 활약했다.

독일의 국민차 폴크스바겐을 개발한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독일 군수업체 크룹의 회장이던 구스타프 크룹, 독일의 경제 재건을 이끈 은행가 히얄마르 샤흐트도 히틀러의 조력자로서 역할을 했다.

이들은 뛰어난 재능과 선량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로 나치스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만큼 뚜렷한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진 않았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히틀러의 반인륜적 범죄에 가담했다.

일부는 전쟁 말기 히틀러와 대립하며 저항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았다. 모두가 평범한 시대에 살았다면 저마다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존경받았을 수 있지만, 현실에선 그러지 못했다.

저자는 이들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묻는다.

"만약 범죄 국가에서 정의와 불의 사이에 쳐진 울타리가 허물어진다면, 유용성의 유혹보다 도덕률을 더 중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히틀러의 매니저들은 이런 힘이 매우 모자랐다."

신철식 옮김. 512쪽. 2만4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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