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1969년 등장한 '관광호'는 당시 나라 형편에 비하여 조금 과도한 호화열차였다. 관광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시절 운행된 관광호를 뚜렷이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1974년 새마을호가 당시 정부가 강력히 밀어붙인 새마을 운동 붐을 타고 선망의 열차로 부상하였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저런 고급열차를 타아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을까, 근검 자조 절약이라는 새마을 정신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특급열차 새마을호는 서울­부산을 4시간 10분에 주파하면서 속도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1986년 유선형 새마을호, 1987년 새마을형 디젤 액압 동차가 나온 다음 지난 월요일 익산­용산간 운행을 끝으로 퇴역할 때까지<사진 아래> 새마을호는 열차가 제공할 수 있는 편안함과 즐거움 그리고 묵직한 안정감 등 여러 측면의 미덕과 여행의 즐거움을 고루 제공하였다. 몸을 감싸면서 받쳐주는 인체공학적 구조와 넉넉한 사이즈, 재질이 주는 쾌적함, 탁 트인 시야 등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차령이 꽉 차 새마을호가 퇴역하면서 이제 KTX의 비중과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ITX 새마을호가 있다지만 무궁화호와 엇비슷한 소요시간과 승차감 등으로 원조 새마을호에 대한 향수만 부추긴다.

공기업은 가급적 다양한 선택권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책무가 있는데 KTX로의 쏠림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노년층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시간에 쫓길 사람은 그만큼 줄어들고 소비지출 규모 또한 감소될텐데 KTX만 늘리는 코레일의 경영 방침이 야속하다. KTX 편성과중은 비용과 시간문제를 떠나 창밖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여행할 권리를 앗아가는 셈이다.

그동안 숱한 열차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지만 이번 새마을호 퇴역에는 전에 보지 못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크게 표출되었다. 마지막 운행편을 탑승하러 일부러 익산까지 다녀온 승객들도 많았다. 고령사회, 감성문화사회 그리고 절약이 요구되는 사회 트랜드 속에서도 선택의 여지없이 고액의 열차 탑승으로 몰고 가는 코레일이 역마다 크게 붙여놓은 무슨무슨 경영대상 수상 자축 플래카드가 공허해 보인다. 누구를 위한 경영일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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