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5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7세기 전반 조각 국보 83호, 석굴암과 함께 한국美 상징, 미소·옷 주름 등 백제 확신

7세기 전반. 높이 93.5㎝. 국보 83호. 국립중앙박물관. 이 불상조각은 석굴암조각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개의 예술품이며 한국을 상징하는 형상으로 가장 추앙받는 작품이다. 같은 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똑같이 생긴 목조반가사유상이 일본 교토(京都) 고류사(廣隆寺)에 있다.

서양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보고서 예술품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한 일이 있었다. 아마도 그 옛날 백제 사람이 만들어 보낸 것이 아닐까 싶은 일본 국보 1호의 반가상에 대한 야스퍼스의 찬사를 정리하여 여기에 옮겨보고자 한다.

“나는 오늘의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표징으로서 여러 모델을 접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제신(諸神)들의 조상(彫像)도 보았고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훌륭한 조상도 본적이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그 어느 것에서도 아직 초극되지 않은 지상적 인간적인 냄새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고류사의 '미륵상'에는 참으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의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있어서 모든 시간적인 것의 속박을 넘어서 도달한 인간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한 그리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심벌이라고 생각한다. 이 불상은 우리 인간이 갖는 마음의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금동반가상에 더 어울리는 말같이 보인다. 나는 이 금동미륵반가상이 그 옛날 백제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만면에 머금은 백제특유의 미소로 봐서 그렇고 둘째는 옷 주름이 부여에서 출토된 와당들의 볼륨 그 만듦새와 같다는 점이 그렇고 세 번째로는 형태 전체가 갖는 부드러운 정감이 그렇고 또 우선하여 직감으로 백제의 솜씨다! 그랬다. 우리 박물관에서 50년대에는 신라라고 표기하였다가 그 뒤로는 삼국시대라고 표기하였다가 88올림픽 때는 부여박물관에 놓았었다. 왜 그랬을까.

야스퍼스가 만약 서울과 경주를 봤더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한 사람의 안목이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대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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