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다

후한(後漢)의 건무(建武) 十六년(A.D 40) 복파장군 마원(伏波將軍馬援)은 병(兵) 1만여를 이끌고 교지(交趾:월남지방)로 남하했다. 징측(徵側), 징이(徵貳)라는 강력 무쌍한 자매(姉妹)가 한(漢)의 식민정책에 반기를 들고 성을 함락시키기를 六五, 기세는 대단하여 징측은 황이라 칭하고 있었다.

마원은 그 후 三년 동안 반란군과 고전을 하게 된다. 이 마원이 교지에서 수도로 보낸 편지가 있다. 형의 아들인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에게, 두 사람이 유협(遊俠)을 좋아한다는 것을 훈계한 것이다.

남의 과실을 듣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자기가 말해서는 안 된다. 국정(國政)을 경솔히 비평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마원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용백고(龍伯告)는 그 사람됨이 중후(重厚)하고 신중(愼重)하며 도 겸손하고 절검(節儉)하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중시하며 그리하여 너희들이 그를 본받기를 바라고 있다. 두계량(杜季良)은 호쾌하고 의협심이 강하며 남의 근심을 근심하고 남의 즐거움을 즐긴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는 여러 고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와서 조상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중시한다, 하나 너희들이 본받기를 꺼려한다. 용백고를 본받으면 거기까지는 가지 못할망정 적어도 근직한 선비가 되리라. 이른바 따오기(곡:鵠)를 새기려다 되지 않더라도 오리하고는 비슷하게 되는 따위다. 하나 두계량(杜季良)을 본받아서 그대로 되지 않으면, 그저 경박한 재자(才子)로 끝날 것이다. 소위 호랑이를 그리려다 되지 않고 개와 비슷해지는 따위다. 정신차려주기 바란다(後漢書:馬援傳)”

무엇을 배우려다가 실패하거나 소질이 없는 자가 출중한 사람의 흉내를 내며 경박하게 행동하는 것을(화호불성반류구:畵虎不成反類狗: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다)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마원의 이 말은 확실히 그 자신의 체험에서 스며 나온 것이다.

우리들도 평상시 꿩 대신 닭이라고 도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더욱 잘 될 때도 있지만, 결과가 나쁘게 나와 어리둥질 할 때도 있다.

운동 경기에서도 상대가 나보다 강하여 초반에 떨어질 듯 했지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 1등을 하는 결과가 돌출 될 때도 있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화호불성반류구(畵虎不成反類狗)가 되지 않도록 해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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