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2]

 

 

 

▲ 아이클릭아트

 

☞10대들의 문체, '급식체'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줄이고, 자문자답하고, 말장난하는 요란한 형태에 실소가 난다. 하지만 절대 웃을 수 없던 단어도 있다. '임거(임대아파트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거(엘에이치 거지)', '빌거(빌라 거지)'다. 뜻을 알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사는 곳이 놀림거리가 된다. 따돌림의 원인도 된다. 아이들조차 아파트 급을 나누는 씁쓸한 현실이다.

☞가장 힘든 건 부모다. 내 아이가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억장이 무너진다. 자식의 눈물에 자신을 원망한다. 원망은 곧 절망이 된다. 더 좋은 것을 물려주지 못함과 더 좋은 곳에 살지 못함에 자책한다. 속내를 대변하듯, 인터넷 맘카페엔 걱정들이 올라온다. "이번에 임대아파트로 이사 가는데 아이가 놀림 안 당할까요?", "휴거라고 부르던데 무시당할까요?"…. 열심히 살아보려는 그들에겐 정말 가혹한 '낙인'이다. 임대아파트는 동정 대상이 아니다. ‘복지’이자 ‘권리’다.

☞LH 기피현상으로 이어졌다. 일부 아파트는 이름에서 "LH를 빼 달라"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임대아파트와 엮이기 싫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0년대 '소셜믹스'를 도입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분양·임대를 함께 조성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정착하지 못했다. 어느 곳은 임대동과 분양동을 구분하려 담벼락까지 세웠다. 골프장, 수영장도 분양동 주민만 쓸 수 있다. 아파트를 붙여놔도,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문제다. 아파트가 '신분평가'의 잣대가 된 사회도 문제다. 지나친 물질주의, 출세주의는 어른이 알려줬다. "걘 어디 사니?", "어디 사는 애랑 놀지 마라"며 편견도 물려줬다. 임대아파트 아이를 기피하는 이유가 '불행한 가정일 거 같아서'라고 한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그들이 더 불쌍하다. 그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불행하다. 모든 관계를 ‘마음’ 아닌 ‘머리’로 계산할 것이다. 사람을 업신 여기는 태도도 내재될 것이다. 갑질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비춰줘야 하지 않겠나.

편집부 김윤주 기자 maybe041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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