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칼럼]
강도묵 대전시개발위원회장


어김없이 올해도 '가정의 달'은 찾아온다. 매년 봄, 새싹은 돋아나고 그것을 완성하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오월은 우리 곁으로 눈치채지 않게 다가온다. 전에는 그래도 오월의 다가섬에 대해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마음에 살을 찌웠다. 요즘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계절이 바뀐 뒤에야 ‘왔구나’하고 받아들인다. 우리는 분명 전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전에처럼 끼니를 굶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먹는 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해결됐는데, 자신의 생에 차단기를 내리는 사람은 점차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이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지 못한 결과이리라.

우리 스스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굶주림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삶의 목표로 삼아온 것이 있다면 오직 '배고픔의 해결'이었다. 가장은 이를 위해 날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고, 이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만족해 했다. 앞뒤 주위에 시선을 돌리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살아온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가족은 소가족으로 형태를 바꿨다. 어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단순화된 생활 패턴을 유지하면 됐다. 상당히 편리한 세상이 됐다지만, 우리의 가슴은 언제나 구멍이 나 있다. 이 구멍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제야 우리는 가정이 무너진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가장은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일에 매진하고, 이웃집 경제를 시기한 아내는 알바에 시달리고, 어쩌다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병에 담긴 소젖을 빨며 다른 이의 손길에 의존해 성장한다. 한 가족이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코골고 자는 시간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유대감보다는 이제는 남같은 사람이 되어 오히려 간섭하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한 푼 덜 벌더라도 이제는 다시 가정을 되살리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일터에서 일을 해도 지켜야 할 가족이 아닌 즐거움을 함께 나눌 가족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해도 언제나 머릿속에는 가족의 울력 속에서 산다는 의식이 있어야 빗나가는 아이가 없다. 조그마한 골칫거리도 부모와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각자 가족 구성으로 낮에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그 에너지를 저녁에는 한 곳으로 모아 가정을 꾸리는 삶은 우리의 가정을 분명히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를 위한 우리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저녁에는 일찍 들어가서 가족이 함께 하는 삶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의 가정은 분명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의식은 그리 변했어도 사회 기반이 따라 주지 못한다면 법적 제도라도 마련할 일이다.

다시 '가정의 달'이 찾아왔다. 그냥 덤덤히 넘기지 말고 한 가지라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봄이 어떨까. 굳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작은 것이라 해도 꾸준히 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 가정을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 놓기 위한 노력이 이 오월에 많이 시도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가정의 달', 오월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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