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장

쉴 새없이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던진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인사를 받는 이웃의 반응이다. 비슷한 연배끼리 살았었기도 했고, 몇마디 더해진 인사말로 서로를 알아가기도 했지만, 요즘은 간단한 목례나 형식적 인사후에 다들 손에 쥔 휴대폰으로 눈길을 돌린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보다는 휴대폰 속의 지인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인 것이다.

예전에 서울 출장길에서 돌아올 때 기차속 일화가 떠올랐다. 네 명의 젊은 직장인들이 다양한 간식거리를 들고 동반석에 앉았다.

난 그들을 보며 오래전 친구들과 기차여행의 달콤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좀 더 지켜 보았다. 그들은 간식거리를 나눈후 약속이나 한 듯이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휴대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같은 공간, 같은 좌석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 동반석에 앉았을까하는 의문까지 들면서 말이다. 그러고보니 남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 두 아들과 외식이라도 할때면 녀석들은 연신 테이블 아래의 휴대폰으로 적극적인 눈길을 보낸다. 나 역시 지루한 모임자리에서 같은 모습이었음을 기억한다.

바쁜 세상이어서, 개인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여서, 존중받기를 원하는 '나'이어서 서로 무례하고싶지 않기위해 우리는 너무 상대를 배려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적극적인 관계에서 오는 부담감을 극복한다면, 더 깊고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다.

예전의 대학가에서는 하숙집에서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는 문화가 있었지만 요즘은 독립된 원룸촌에 기숙사도 2인실이나 1인실이 대세여서 커뮤니티가 점점 고갈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코하우징', '쉐어하우스'의 등장으로 예전에 느꼈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지고 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시설과 소통장치들이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을 깨우는 공간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같은 목적을 가진 동호회로부터 다양한 문화행위를 즐기는 모임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SNS를 통한 소통으로부터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즉, 목적을 가진 소통에는 적극적이면서도 일상의 소통에는 소극적인 행태가 최근의 트랜드가 되어버린 듯 하다.

모두에게 여유가 있는 쉼이 필요하다. 아무런 목적없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들이 필요하다. 그냥 멍때리고 앉을 수 있는 공간, 옆에 있는 이웃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공간, 햇빛과 바람과 푸르름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따뜻함과 서늘함과 고요함의 오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존재가 필요하다. 무기능, 무목적의 거리의 쉼터로서 아무 때나 쉽게 앉을 수 있는 단순한 벤치가 있고 몸을 맏기면 움직이는 그네가 있고 높이가 다른 전망데크가 도심속에 존재한다면 일상에서의 쉼과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소통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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