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장

지난 1월 어느 여 검사의 폭로로부터 시작해 우리나라는 미투 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고위 공무원 집단인 검찰 조직은 누구보다 더 철저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검찰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스러운 행동을 보인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그 후 법조계뿐만이 아니라, 정치계, 언론계, 종교계, 문화 예술계와 교육계 등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성희롱, 성추행 그리고 더 나아가 성폭행 사건들은 놀라움과 실망감을 넘어 충격과 분노를 일으킬 정도다.

많은 미투 사례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안에서도 '갑'의 위치에 놓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각 분야에서 권위가 있으며 명예를 얻은 이들이었고, 이런 권위와 명예를 통해 부까지 얻은 사람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민낯을 바라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어디 이뿐이랴? 부하 직원이나 하청업체 직원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언행이나 행동을 일삼는 재벌 2세, 3세들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는 다양한 형태의 '갑'질들에 불쾌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사회 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에서 나오는 미담 사례가 더욱더 그리워진다. 이 말의 어원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있었던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문과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문이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났던 '백년 전쟁'에서부터 유래된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한 도시인 '칼레'를 점령한다.

칼레 시민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항복 사절단을 왕에게 보낸다. 에드워드 3세 왕은 칼레 시민의 목숨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그동안의 저항에 책임을 지고 시민 중 6명을 교수형에 처하고자 한다. 칼레 시민들은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할지 서로 논의하였지만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이때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티슈 드 생 피에르'라는 사람이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법률가 등의 귀족들이 사형수로 자청한다. 왕비의 간청을 통해 이들의 희생정신의 내용을 들은 왕은 감복하여 처형을 취소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작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나의 생명과 한 인간으로서 나의 존엄성이 소중하듯 내 이웃의 생명이 소중하고 그들의 존엄성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 또한, 내가 누리고 있는 권위와 명예 그리고 부의 축적까지도 나 스스로 만들었다는 교만한 생각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동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고 모범이 돼야 한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하고 도덕의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보다 아름답고 건전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모습 또한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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