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을 만나 내 인생이 술술 풀린다’, ‘그곳에 가면 행복이 있다’, ‘당신의 기쁨을 키워가겠습니다.’ 결혼정보업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달달한 이 문구들은 은행·금융권의 TV광고 카피들이다.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나를 믿어도 좋다는 것. 네거리 목좋은 곳에는 은행 지점이 차지하지 않던 곳이 없어 친절한 미소로 맞이하는 우리의 ‘이웃’처럼 보인다.

금융회사를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 조차 대출을 받고 자신의 월급, 수익을 맡기고 카드를 쓰고 모바일 앱으로 송금하며 금융거래를 한다. 공기와 같아 아무도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은행업권에 대한 신뢰와 필요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기억하는 2008년 금융위기에도, 차고 넘쳐 다 알수도 없는 대출상품들과 불완전판매에도 사람들이 금융회사와의 손을 놓지 못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랜기간 경기침체를 겪은 사람들이 금융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취약차주 수는 1년 전보다 3만 3000명 늘어난 149만9000명이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1500조 가계부채 문제가 부각되자 금융권을 향해 일차적 사회적 책임의 화살이 날아갔다. 빚 권하는 사회라는 말은 이미 오랜 숙어처럼 돼버렸다. 날아간 화살은 삼성증권의 배당사고 인해 증권제도 문제로 확대됐고 금융시스템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은 커졌다.

먹거리 위기보다 근본적인 신뢰 위기가 닥친 것이다. 금융업 종사자들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 자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과 신뢰에 대한 통념에 피해갈 수 없는 자조섞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언론은 우리의 ‘이웃’인가.

윤희섭·대전본사 경제부 aesup@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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