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1980년대

85학번 제자 허 군의 복장은 늘 깔끔했다. 칼날같이 다린 바지 줄은 물론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광택을 낸 구두는 패션의 완결을 이루었다. 동료 학생들 대부분의 무신경한 허술한 차림과 대비되면서 허 군의 매무새는 재학 기간 내내 인상적이었다. 복장에 신경 쓰면 공부는 언제하는가 할만한데 학업에서도 우수하였고 부모님께 대한 효심 또한 각별하였다. 파리에 살고 있는 허 군을 가끔 만날 때면 그의 구두며 바지를 흘낏 보곤하는데 예전의 빛남은 사라진 듯 하였다. 이국생활과 세월의 무게로 생각하고 교단의 추억 가운데 반짝이는 대목으로 간직한다.

# 2010년대

번화가 네거리 요지에 자리 잡은 구두미화원 가게. 구두를 닦으며 주인에게 말을 건다. 이렇게 좋은 위치라 수입이 짭짤하겠다고 하자 이내 정색을 하며 반박한다. 가게 문을 열더니 지나가는 행인들의 신발을 보라고 한다. 저 가운데 약칠하여 닦아 신는 신발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구두미화원에 맡길만한 신발은 보기 드물었다. 주로 운동화에 스포츠 신발, 샌들에 슬리퍼까지 닦아 신을 필요가 거의 없었다. 간혹 정장 가죽구두가 있다 하더라도 반짝이도록 광을 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예전 구두닦이 소년들의 외침이 귓가에 맴도는듯한데 이제 구두를 정성들여 빛나게 닦아 신고 다니는 시대는 지나갔을까.

그날 이후 사람들의 신발을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대학생들은 물론 직장인들도 구두에 광을 낸 경우가 드물다, 물론 고위 공직자나 군장성, 임원급 직장인이라면 단골 미화원이나 당번병이 아침마다 광을 내어 가져오겠지만 전체 대비 비율은 미미하다. 신발 매무시에 신경을 쓰지 않는 실용주의 시대인지 광택을 낸 구두를 신을만한 직장이 많지 않아선지 또는 약칠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도록 바빠졌는지, 달라진 신발문화에서 달라진 세상의 흐름을 짚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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