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상열 대전시 자치행정국장

오늘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58주년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라고 명시된 것에서 알 수 있듯 4·19혁명은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이끈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그보다 약 한 달 앞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8민주의거가 우리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대전 시민들조차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3·8민주의거는 대전의 고등학생들이 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맞서 자유, 민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으킨 학생 민주화운동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실정은 극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30%가 넘는 높은 실업률과 빈곤으로 인해 민심은 급속하게 이반됐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감지한 자유당은 부정선거를 통한 장기집권을 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60년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예정된 야당 후보의 선거연설회에 맞추어 대전고등학교 1·2학년 학생 1000여명이 거리로 나와 독재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쳤다. 경찰이 학생대표들을 연행해 가는 등 탄압을 가하자 3월 10일에는 다시 대전상고 학생 600여명이 자유당의 정부통령 선거 전략을 규탄하고 구속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한 달이 넘게 이어졌고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그 시절은 독재 권력에 대해 저항은커녕 감히 비판조차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모두가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정부에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 상황을 감안할 때, 학생들이 스스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고 담대하게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혼탁한 사회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정의롭고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에 결국 4·19혁명이라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씨앗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자랑스럽고 특별한 역사인 3·8민주의거가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7년에 비로소 둔지미공원에 기념탑이 만들어졌으며 의거가 일어난 지 무려 53년이 지난 2013년에 와서야 정부로부터 민주화 운동으로 법률적 인정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인 마산 3·15의거, 대구 2·28민주운동이 지난 2010년과 금년도에 각각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정부차원의 기념식과 함께 행·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초라한 수준이다.

이제라도 그에 합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3·8민주의거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견인한 역사적 사건이며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주역들이 이제 칠순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 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침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3·8민주의거 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상황은 무르익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3월 8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범시민적인 노력을 결집해 나갈 것이다. 내년부터는 3·8민주의거 기념일이 대전시민만이 아닌 전 국민이 함께 기념하는 날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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