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변평섭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

다산 정약용을 비롯 조선시대 존경받을 많은 선비들이 암행어사의 직책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것 '암행어사' 하면 '어사 박문수' 그리고 '춘향전'에 나오는 '어사 이도령'이 떠오른다. 그만큼 내용에서 드라마틱한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신임 삿또의 수청을 들지 않는다고 옥에 갇힌 춘향이를 죽음 직전에 구출하는 이도령의 모습은 참으로 통쾌하다. '촛불 눈물 떨어질 때 / 백성의 눈물도 떨어 지고…(燭淚落時民淚落)’이라는 명문장도 남겼다.

그러나 암행어사가 하는 직분의 가장 중요한 것은 탐관오리의 적발에 못지 않게 도량형(度量衡)과 죄인을 다룰 때 쓰는 형구(刑具)가 옳게 쓰여지는 지를 철저히 파악하는 것. 그래서 임금은 임지로 떠나는 암행어사에게 마패와 함께 놋쇠로 만든 '유척'(鍮尺)이라고 하는 자를 두 개 하사했다.

하나는 물건을 재는 자. 이것이 표준 보다 길어도, 짧아도, 백성에게 돌아 가는 피해가 컸으며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악용했던 것. 죄인에게 매질하는 데 쓰이는 태(笞)도 마찬가지로 관가에서 제멋대로 쓰였다. 형리(刑吏)에게 뇌물을 바친 죄인에게는 곤장의 크기가 달랐고, 괘심죄에 걸린 죄인에게 가하는 매질은 엄청난 상처를 내는 바람에 백성의 원성이 높았다.

얼마나 법의 집행이 불공정하고 비리가 많았으면 임금이 이렇듯 자와 형구를 감독하도록 암행어사에게 명했을까? 물론 어사의 의지가 확고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 제도도 실효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모든 도량형이 전산화되어 그것을 조작하기가 어렵고 형구 역시 인권침해 시비가 많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옛날 임금이 어사에게 하사한 잣대와 형구는 엄격하게 지켜내야 할 국가적 기준이며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국민의 눈높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잣대나 형구가 더불어 민주당의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 자유한국당의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 서울, 대구, 대전, 광주…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인정 받을 눈높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높이는 보편성을 지녀야지,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눈높이는 상·하, 좌·우, 초점이 흐려져 버린다. 가령 법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에게 김기식 금융감독 원장의 행태가 타당한가 하고 물었을 때 '글쎄???'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 그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는 고도의 전문성과 함께 도덕성이 요구되는 금융감독원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그 자신도 과거 참여 연대 활동을 할 때나 국회의원 시절, 그렇게 주장해 왔었다.

최근에는 정부 비판 세력으로 가장해 네이버에서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3명이 민주당원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이 여권의 핵심 의원과 대화를 주고 받은 사실 또한 압수된 휴대폰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빚어 졌던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댓글 조작사건을 엄격하게 처리한 현 정부가 한 그대로 잣대를 적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잣대와 형구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정부에 따라 다르면 국민은 피곤하다. 그리고 그 피곤이 쌓이면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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