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원초적 생명 날고있는 형국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3. 백제금동향로]
1993년 부여절터 흙서 발견높이 64㎝·우아한균형 뽐내
용이 불꽃·연꽃봉오리 받쳐, 원초적 생명 날고있는 형국

▲ 백제금동향로
7세기. 백제. 높이 64㎝. 국보 287호. 부여박물관.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 흙더미 속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대형 향로이다. 중국에 좋은 향로가 많지만 이와 같이 똑 떨어지게 아름다운 형태는 내가 아직 보지를 못하였다.

이 향로의 발견 소식이 연일 신문 방송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그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사진으로만 보기에도 대단한 걸작품 같았다. 그 무렵 어떤 신문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편집국장이 쓰는 칼럼이 있는데 갑작스럽게 출장을 가서 그것을 날보고 메꿔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고 해놓고 무얼 쓸까 생각하던 중에 향로 발견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생각이 나는 것 이었다. 그래서 즉시 쓰기 시작하였다. 여기 그날의 감격 한 토막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자유스럽고 활달하고 자신 만만한 기상이 비길 데가 드물 것 같다. 거기에 우아한 품격과 사랑과 평화를 구현하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조형적 구사력과 깜찍스러운 균제미와 경쾌한 공간감과 지금 살아있고 영원토록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지금 막 날고 있는 형국이었다. 용이 받치고 있는 향로의 형태는 불꽃이고 연꽃봉오리였다.

그것은 원초적 생명 그것이었다. 감각의 섬세함, 예리한 관찰력, 더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표현의 절도, 맺힘과 흘러감은 물 흐르듯 하고 시작도 안 보이고 끝도 안 보였다. 어른이면서 아이스럽고, 어둠을 벗겨낸 맑음과 밝음의 아침…. 아 이것을 만든 이는 누구였을까’, ‘백제가 망하던 날 우물 속에 갇혀서 천사백년을 잠자다가 20세기 후반에 사 세상 빛을 보는 것인데 역사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희비영욕을 비켜서서 아름다움의 영원한 승리를 목격하는 것 같다’고 썼다.

아득한 옛날, 이름 모를 한 예술가의 넋이 우리를 기쁘게 하였다. 나중에 정부 모 기관에서 해외홍보용 책자를 만들 때 그 칼럼이 4개국 말로 번역돼서 거기에 실렸다. 백제금동향로가 국외에 알려진 것 이었다. <서울대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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