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칼럼] 
허재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

일전에 남한의 연예인들이 평양을 방문해 ‘봄이 온다’라는 주제로 공연을 펼치고 돌아왔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평창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방남(訪南)한 북측 예술단인 삼지연 관현악단이 강릉에서의 공연에 이어 서울 공연도 개최했다. 필자는 운 좋게 서울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140여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악단은 대부분 20~30대 청년들로 보였다. 통일된 복장을 한 연주자들이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아름다워 보였다.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교육받거나 방송의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는 상식이 맞는 것이라면 그들은 우리보다 힘들게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같은 극장 안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대 위는 북한 영역으로, 객석은 남한 영역으로 나뉘어져있는 것 같아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바로 남한과 북한의 경계와 같이 느껴졌었다. 아름답고 유쾌한 음악은 흐르고 있었지만, 극장 안을 짓누르는 어색한 남·북간의 이질감보다 더 무거운 단절감이 있었다. 물론 이런 어색함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한민족이라는, 같은 핏줄이라는 안타까움도 동시에 있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였고, 민주주의의 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말미암아 조국은 분단됐다. 물론 이 과정에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개입됐다.

분단된 국가이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태어났고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때 왜곡되고 오용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혼란 속에서 살기도 했다. 과거 정권은 부패하였고 학생들은 4·19를 통해 저항했다. 혼란스러운 사회는 군인들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명분을 제공하였고, 국가는 군인들의 손안에 들어갔다. 군부정권은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립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우리는 북한을 이 지구상에서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믿게 되었고, 반공은 우리의 신앙이 되었다. 남한에서는 197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10·26사건), 12·12 군사반란과 전두환 군사정권의 등장,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이한열 사망사건, 노태우 여당대표의 6·29선언 그 후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등의 역동적인 사회변화가 이루어졌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정권의 세습만 이뤄졌다. 이것이 남과 북의 이질감의 원인일 것이다.

2018년 2월 7일 북한선수단의 동계올림픽 참여에 대해 어떤 언론은 ‘육해공 다 열어주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또 다른 언론에서는 ‘드디어 땅 길, 바다 길, 하늘 길 열리다’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전자는 막 대북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육해공 다 열어주어서 제재효과를 반감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읽히고, 후자는 남북교류의 활성화가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결국 방법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남·북간의 대립을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는 데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대립으로부터 이득을 취하게 되는 나라는 우리가 아니라 강대국들일 것이다. 남과 북 사이에 봄처럼 새롭고 평화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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