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알레지아에 있는 ‘베르생제토릭스’ 동상.
▲ 베르생제토릭스
모든 연령대가 좋아하는 이른바 '국민만화'를 가진 나라는 행복해 보인다. 만화가 예술의 중요 장르로 자리 잡고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두 측면에서 톡톡히 제값을 하는 이즈음 아직도 만화를 청소년 유해 환경의 주범, 시간낭비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프랑스처럼 남녀노소 '아스테릭스' 만화 시리즈를 애호하는 경우는 특별하다. 프랑스 민족의 뿌리인 골 족(族)이 그들을 침략해온 로마의 시저 군대를 골탕먹이는 줄거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이제 만화 차원을 넘어 인문학 텍스트, 국민통합 미디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아스테릭스와 같은 시대 골 족 우두머리였던 베르생제토릭스의 삶과 죽음은 아스테릭스 만화가 불러일으키는 국민감정, 민족의 뿌리를 향한 각성과 같은 맥락으로 연역된다. 특히 유럽연합 체제에서 자칫 희석되기 쉬운 국민결집, 민족 자존감의 표상으로 나폴레옹, 드 골 같은 인물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시저가 이끄는 로마군에 대항하여 분전하였으나 결국 기원전 52년 프랑스 중부 알레지아에서 패배한 베르생제토릭스는 로마로 압송되어 굴욕적인 여생을 보내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죽음에 처해졌다. 역사를 통하여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긴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17세기 루이 14세 치하의 무리한 대외전쟁, 나폴레옹의 원정 같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프랑스에서는 일찌감치 백기를 내걸고 투항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연유로 전쟁의 참화를 줄이고 문화재를 지켜낼 수 있었다지만 패배한 인물을 영웅시하는 저변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의 맥락이 읽힌다.

승자 위주, 승자 독식의 역사관과 서술에서는 모든 평가와 의미 부여를 이긴 자에게 몰아주고 그로 인한 왜곡과 폄하의 폐해는 크다. 우선 신라와 백제의 경우만 해도 그러한데 새로운 역사관의 정립이 필요한 이즈음, 프랑스가 국수주의 부활을 경계하는 목소리 속에서도 베르생제토릭스를 높이 평가하는 저간의 과정을 살펴볼만 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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