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

2002년의 대한민국은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다.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힘껏 외치며 응원했고, 국가대표 선수들은 멋진 승리로 국민들에게 보답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함성은 필자에게 아직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지만 남녀노소 누구든 거리에 나와 당당히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대한민국의 승리에 기뻐했던 그 순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다시 한 번 새롭게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108년전, 우리는 국가를 빼앗기고 일본의 탄압에 숨죽여 살아야 했던 슬픈 역사를 살았다. 일본의 무단통치로 국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나라를 잃은 한은 고스란히 마음 속 깊이 묻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 속 응어리는 1910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너나 할 거 없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고, 그러한 국민들의 열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상하이를 거점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빼앗긴 국가를 되찾고자 조직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활동은 기대와 달리 녹록지 않았다. 수립 초기, 임시정부의 통신과 군자금 확보를 담당하던 교통국과 연통부가 일본에 의해 발각되면서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임시정부는 조직 내부적 갈등과 국제사회의 무관심 등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했고 이봉창, 윤봉길 등 한인애국단 단원들의 활약으로 독립운동단체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단절되지 않고 유일하게 존재한 독립운동기구로 남게 됐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이하 생략)… 계승하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인 삼균주의에 사상적 바탕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단순히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4월 13일, 많은 분들에게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그날. 대한민국의 근간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내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이하며 정부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기념관 건립이 좋은 계기가 되어 더 많은 국민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기억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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