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6·13 지방선거 즈음하여, 그리스 솔론을 되찾다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8년 04월 06일 금요일 제22면     승인시간 : 2018년 04월 05일 17시 10분
서정만 대전지방변호사회 제1부회장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곳은 아테네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던 소아시아지방이지만, 당시 소아시아지방이 번성할 때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하던 아테네, 그런데 그리스 중의 그리스로 민주주의의 산실로 그리스의 심장으로 아테네는 거듭 태어난다.

그리스 문명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은 누가 뭐래도 철학과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교과서적으로는 시민에 의한 지배라고 할 것이며, 공정한 선거제도와 법치주의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인류가 문명화된 이래 자유와 평등의 확대를 추구하여 오고 있으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균형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2500년전 그리스 또한 같은 문제로 극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운이 좋은 그리스는 위대한 지도자 솔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스 7현자 중의 한 명, 귀족 출신의 정치가, 입법가, 시인인 솔론(BC630~560)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그리스를 개혁하기 위하여 귀족과 평민의 중재자로 시민의 참정권 확대를 위하여 채무 때문에 노예가 된 시민을 해방시키고, 귀족의 공직 독점권을 폐지하고 국가중요사항은 시민들의 투표로 결정하며, 귀족에게 유리한 드라코 법전을 개정하여 6000명의 배심원을 둔 배심제(시민법정)를 완성하여 국민주권주의를 달성하였다. 솔론은 정의의 전도사로서 부자, 귀족들의 탐욕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예견하고 조국에 필요한 것은 정의롭고 아름다운 법만이 질서와 조화를 가능하게 하고 법의 힘으로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이 지혜로워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한계가 있었으니 그 한계는 노예제도와 여성, 아테네 40만의 인구 중 시민(여성·아이 포함)이 13만, 거류민 7만, 노예가 20만으로 인구 절반이 노예였으며, 플라톤도 노예제도를 옹호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쟁은 복종하기로 되어있는 자가 복종하지 않을 때 그들을 굴복시키는 수단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자기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 위대한 비극 작가 중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에우리피데스(BC484~406)는 노예제에 대하여 ‘많은 노예들은 노예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달고 있지만, 영혼만큼은 시민들보다도 더 자유롭다’라며 진정한 휴머니즘과 노예제 반대를 처음으로 제기하였으며, 고르기아스의 제자인 알키다마스도 신은 우리를 모두 자유롭게 만들었다. ‘자연은 노예를 만들지 않는다’라며 인간의 평등함을 강조한 것을 보면 기독교 혁명 역시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자유가 신장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혜로운 자의 방향성 제시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많은 것이 변화되어 발전되는데 개개인의 노력의 한 부분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진보, 보수, 중도만을 지향점으로 각각 내세우며 시민들을 자신이 주장하는 방향만으로 인도하려는 정치인, 지식인, 시민단체들이 많으나 정작 중요한 사실은 색채를 제거하고 진실을 찾아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모습이다.

6·13 지방선거가 두 달 앞에 놓여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우리 마을, 동네, 우리 시와 구를 아름답고 훌륭하게 이끌어나갈 대표, 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 정당의 이익보다 우리 마을과 동네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대표를 뽑는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우리의 안정적 생활정치를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하길 기대하여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http://www.cc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