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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주머니 속 송곳.' 송곳은 뾰족하고 날카롭다. 주머니 속에 있으면 자칫 몸을 찌르거나 옷을 뚫고 나올 수 있다. 흉기로 휴대하면 눈에 띄어 해치려는 저의가 탄로 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주머니 속 송곳'은 이런 뜻이 아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어디를 가든 남의 눈에 쉽게 띈다’는 비유다. 흉기 송곳이 어찌 걸출(傑出)을 드러내는 물건이 되었는가.

전국시대 말기 조(趙) 나라는 진(秦) 나라에게 침략을 받아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다. 조나라는 초(楚) 나라에 지원병을 청하기로 했다. 조나라 대부 평원군은 식객들 가운데 문무를 갖춘 20명을 선별하기 위해 고르고 골랐지만 한 명이 모자랐다.

그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자신을 뽑아달라고 청했다. 평원군은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라며 모수의 청을 거절했다. 모수가 평원군의 빈객으로 있은 지 3년이 되었지만 평원군은 듣고 본 적 없어 재능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수는 “저는 오늘에야 당신 주머니 속에 저(송곳)를 넣어달라고 청합니다. 저를 좀 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했더라면 그 끝만이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라 응수했다. 평원군은 예사롭지 않은 언행에 합류를 허락했다.

지원병을 놓고 두 나라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평원군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때 초 왕 옆에 있던 모수는 칼을 만지작거리며 초 왕에게 넌지시 말했다. “초나라의 군사보다 제 칼이 왕과 더 가까이 있습니다” 척하면 삼천리, 초 왕은 초나라에 지원병을 보내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모수가 자천(自薦) 하지 않았더라면 초나라 역사는 분명 달라지지 않았을까.

'주머니 속 송곳'의 유래다. '주머니 낭(囊)'의 '송곳 추(錐)', 낭중지추(囊中之錐)다. 송곳은 닭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마리의 '학' 군계일학(群鷄一鶴)에 비유된다. 개밥에 도토리가 아니다. 모수가 자신을 추천했다고 해서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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