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약이 넘친다. 이제까지 어떤 선거였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공약과 슬로건이 적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은 제쳐 두고 듣는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공약이 많았다. "국회의원 정수를 3분의 1로 줄인다." 참 멋있는(?) 공약이다. 국민의 관심을 끌어 보자는 황당한 공약은 더 많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겠다", "신안 앞바다 보물을 캐내서 모두를 부자로 만들겠다". 결혼수당 1억 원, 당선 즉시 계엄선포 후 국회의원 전원 구속…. 나아가 불효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서글픈 공약에, 암행어사 제도를 부활시킨다는 귀여운 공약도 있다. 비록 돈키호테들의 말이라고는 하나 국민들이 그것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다.

공약도 그렇지만 선거 슬로건도 승패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바마는 "Yes we can change!"라는 한 마디로 승리를 쟁취했다. "준비된 대통령"이나 "경제 대통령"은 대선 승리에 큰 역할을 했지만, "깨끗한 경제, 튼튼한 경제"라거나 "가족이 행복한 나라"처럼 교과서 같은 이야기는 먹혀들지 않았다.

이제는 비록 설익기는 했지만 민주주의도 '뿌리내리고' 있다. "배고파 못 살겠다"와 같은 구호는 안 먹힌다. 결국 사람답게 사는 게 주된 관심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듣는 사람들의 감각 등급을 높여줬다. 과거 메말랐던 공약들에 비하면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의 연장선상으로도 느껴진다.

자칭 산중거사(山中居士)로 자연과 벗 삼아 지낸 지 10년 가까이 된다. 복잡하고 숨 막히는 도심을 벗어나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안다. 하지만 그런 산중 생활에는 낭만만이 있는 건 아니다. 밤이 되면 사방은 어둡고 고요하다. 이웃에 무슨 일이 있는지 방 안에 들어 앉아 있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런 적막함과 고요가 주는 안정감은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겐 나름 로망이기도 하지만, 도시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종종 생긴다. 2011년 8월, 새벽일을 나갔던 같은 마을 황 씨가 일을 당했다. 당시의 신문 기사다. "4일 오전 5시 20분 경 충북 괴산군 연풍면 황모(56) 씨의 옥수수 밭에 멧돼지 떼가 출몰해 황 씨가 온몸을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 공무원연금지 3월호에는 안동시 와룡면 남홍주 씨의 글 '산돼지의 습격' 이란 기고문이 실려 있다. "막상 산돼지의 습격을 당하고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짐승 피해는 물질적인 손해도 손해지만 심리적인 충격이 큽니다." 며칠 전에는 "충북에 멧돼지 습격 경보, 사람도 물어"라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요즘은 도시 안까지 쳐들어오는 간덩이 부은 멧돼지도 있다. EBS 야생 프로그램에서도 멧돼지 개체 조절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인간이 개체수를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천적이 없어져 버린 멧돼지의 천적이 되는 것도, 크게 보면 그것도 '자연'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먼저다!" 이 말이 장식용인지, 정말로 애인(愛人) 정신에서 우러난 말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와룡면 남홍주 씨나 연풍면 황 씨 뿐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시원하고 명쾌한 대답, 그것이 '개헌'이나 '당선'보다 더 시급한 '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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