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이제 막 돋아난 싱그러운 연록색의 잎, 잎보다 성급하게 피어난 화사한 꽃, 활기차게 움직이는 학생들, 4월의 캠퍼스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인생의 반은 새로운 것을 찾는 탐험의 시간이었다면 나머지 반은 경험한 것들을 추억하고 떠올리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추억이 깃든 장소나 아름다운 풍경,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늘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데 시간은 그 모두를 흘려보낸다.

부활절과 함께 시작하는 4월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눈을 감으면 고향 오하이오 신시내티가 보인다.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우리 가족이 교회로 함께 가던 길의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1942년에서 1949년까지는 2차 세계대전 중이었기에 차를 타는 대신 걸어서 교회까지 가야만 했다. 신시내티는 언덕의 도시이기 때문에 걷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부활절에는 새 옷을 입어야 했는데 소년들은 대개 반바지 정장에 긴 스타킹을 신었다. 점잖은 복장이었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 옷차림으로 언덕을 넘고 또 넘다보면 땀에 흠뻑 젖곤 했지만 성가대의 성가를 앞에서 듣기 위해선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부활절 전주 금요일에는 학교를 일찍 마치고 모든 학생들이 교회로 가서 예수님의 고난을 재현하는 연극을 보곤 했다. 날씨가 좋으면 부활절 새벽에 야외 예배가 열리곤 했다. 어린 필자에게는 새벽 예배 후에 나오는 빵이 그렇게도 맛있었다. 미국의 교회들은 길게는 6주전부터 부활절 행사준비를 하고 일반 가정에서도 부활절 단 하루가 아닌 주말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기에 4월은 그렇게 부활절과 함께 보내곤 했다.

필자가 어린 시절 미국의 경제상황은 최악이었다. 1930년대는 대공황, 1940년대는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부활절만큼은 경제를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어머니는 솜씨를 발휘해서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만큼 식탁을 가득 채워주시곤 했다. 유년시절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은 부활절과 함께한 4월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필자는 타향에서 부활절을 지낸다. 요즘은 아들, 딸, 손자가 그리우면 핸드폰으로 화상통화를 하면 된다. 발달한 교통에 IT산업의 편리함이 더해져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쉽게 예약하고 떠날 수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기계조작이 어려운 사람들도 말로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정말 편한 세상이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얼까. 불편했던 것마저 아름답게 기억되고 미워했던 사람마저 그리운 이유는 바로 추억때문일 것이다. 추억속에서 필자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4월을 맞이하며 필자는 학생들에게 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주위의 풍경을 느껴보라고 권해본다. 무심하게 현재를 흘려보내면 훗날 떠올릴 아름다운 추억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 지난 일들을 즐겁게 떠올리고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을 지금에 와서야 사랑하게 된 것은 그 순간이 내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4월, 만물이 사랑스럽고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맙다. 오늘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 여러분들도 오늘을 기뻐하고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이 봄날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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