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류지봉 충북 NGO센터장


얼마전 페이스북에서 2008년 비밀등급이 해제된 '조직내 생산성을 낮추기 위한 CIA 사보타지 매뉴얼'이란 것을 보게 됐다. 이 문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발행된 소책자로 적국의 여러 조직에 침투해 있던 스파이들을 위한 방해공작 현장 매뉴얼이다. 이 지침서는 표지와 서문, 목차 그리고 본문의 32페이지로, 본문에는 조직에서 일반적인 방해공작과 사기를 낮추고 혼란을 조성하는 일반적인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혹시나 우리 조직의 모습이 지침서에 나와 있는 조직의 모습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또 실제 이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스파이가 조직내 있었다면 정말로 답답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조직이 운영된다면 민주적이고 활동성을 가진 조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매뉴얼을 살펴보면 첫 번째 챕터 '조직'에서는 가능하다면 모든 일은 오랫동안 논의하게 만든다거나 의사소통, 회의록, 결의안에 사용되는 문구에 대해 입씨름을 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라고 가르치고 있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해 신속한 합의를 끌어 내야하는 전쟁속에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힘들게 해 조직의 순발력을 떨어뜨리는 기술이다. 충분한 소통과 합의 그리고 합의된 사항의 충실한 이행은 조직운영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챕터는 조직 '관리자'에 대한 부분안데 재미 난 것들이 많다.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말라거나 지시사항에 대해 끊임없이 투덜거리라고 돼 있다. 과업을 할당할 때는 항상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정하고, 그럴싸한 방법으로 문서작성을 늘리고 절차나 순서를 복잡하게 만들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스마트하게 조직을 운영하고 싶다면 점검해 봐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관리자는 조직 구성원들이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형식적이고 부수적인 일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사무직'. 복사할 때 항상 적게 복사하고 복사하는 일을 더하게 하라든가, 내부 소식통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라고 쓰여 있다. 이 정도면 참 치사하다 싶은 정도로 구체적이다. 하지만 조직을 균열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일 듯하다. 좋은 조직의 핵심은 구성원간의 신뢰인데 그것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네 번째 챕터 '종업원'에서는 일을 잘못하게 되면 장비를 탓하고 자신의 스킬과 경험을 후배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조직에서는 정해진 기준에 의해 정확하게 평가를 거쳐 개선점과 성과를 정리해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NGO에서도 민주적 운영,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 활동가로서 비전과 전망 찾기 등 활기차고 건강한 조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사회의 공익을 위한 NGO가 좋은 조직을 넘어 위대한 사회를 만드는 위대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조직의 사명(Mission)을 실현하기 위해 일관되고 합리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운동성을 갖춘 조직, 구성원 모두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함께 성장하는 조직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적 원리가 자연스럽게 작동되는 조직이어야만 할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역동적인 원리로 운영되는 NGO 미래상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