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우리가 흔히 쉽게 해결 안되는 일이나 장애물을 '담'이라고 한다. '담'이란 집이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돌,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린 것을 담이라 하고 '담벼락'이라고도 부른다. 영어로는 ‘wall’ 또는 ‘fence’로 표현하는 좁은 골목길의 담의 개념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내 집과 남의 집을 구분하는 경계로서의 담은 양상군자들이 꽤나 난무하던 해방이후 60~70년대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심지어 높은 담장 위로 철조망이나 유리조각을 박아둬 외부침입자를 한치도 용납하지 않았다. 범죄예방과 외부침입자로부터의 방어가 여간 삼엄한 게 아니어서 이제 담은 담으로써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흉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또한 어느 따뜻한 봄날, 해 뜨는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순도순 정겹게 소꿉장난을 하고 놀던 동네 '영희와 철수'같은 어린이들을 찾아보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청주에는 아직도 오래된 원도심을 중심으로 좁은 골목길을 이루며 길게 늘어선 담벼락 동네를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참으로 정겹고 반가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영화촬영지로 유명하여 이제는 청주의 대표 관광지로 변한 '수암골'을 중심으로 좁은 골목길을 걸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곳의 담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하나의 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미술시간에 그린 동화같은 그림들을 만날 때면 '청주만의 특별한 표현은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전국은 지금, 마을 만들기, 마을가꾸기, 원도심 살리기와 같은 도심재생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도시 재생. 너도나도 다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청주는 청주다워야 한다. 이제 봄이다. 쓸모없는 좁은 골목길의 '담'을 헐고 '담'안에 숨겨져 있을 '뜰'을 밖으로 드러내는 '청주 골목 환경캠페인'을 시작해 보자. ‘나와 남의 담이 아니라, 너와 나의 뜰만들기’운동을 전개해 보자는 의견이다.

'담'을 헐고 담을 대신하는 '경계목'을 심어 녹색 친환경 마을을 만들고, 가뜩이나 좁은 골목에 자동차라도 주차하는 경우에는 더 없이 삭막한 대문앞길을 작은 화단으로 가꾸어 벌과 나비가 찾는 '청주만의 골목길'을 만들어보자.

오래 전 북유럽의 작은 마을로 업무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왕복 2차선 도로와 자동차길 양옆으로 보행자 도로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은은하게 바닥을 비추는 '키 작은 가로등'이었다. 참으로 이색적인 경험은, 필자의 어깨 높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 가로등이지만 차량통행과 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역을 안내하던 현지인에게 물었다. "이 마을의 가로등은 왜 이렇게 높이가 낮은가요?”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로등이 키보다 높으면 '달과 별을 볼 수 없잖아요”. 그때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밝은 달과 별들이 손에 잡힐 듯이 아롱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순간, 머리를 때리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감성마을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렇다. 마을이 가지는 '마을다움'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에게 '마을가꾸기' 사업이란, '자연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라는 사실 앞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맑은 고을'이라 하여 붙여진 우리도시 '청주' 역시 깊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청주도 이제 다시 봄이다. 청주의 85만 시민에게 문화적 그릇을 제공하고, 문화로 삶을 더욱 건강하고 풍요롭게 담는 일은 바로 우리 지자체가 해야 할 과제이다. 도시는 자연의 일부이면서 도시민들의 생활을 담아내는 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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