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

5·16 군사혁명의 주역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1968년 반대세력에 밀려 외유를 떠나면서 '자의반 타의반'이 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지금도 정치권에서 많이 쓰여지는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충청권의 정치적 입지는'자의반 타의반'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JP를 추종하는 충청권 출신 정치인들이 수난을 겪었으며 '3선 개헌 파동'때는 더욱 많은 고초를 겪었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JP가 대통령후보를 양보하고 김대중(DJ) 국민회의후보에게 충청표를 몰아 주는 대신 국무총리 자리를 약속받는 이른바 1996년의 'DJP'연합이다. 이 거대한 정치거래도 몇 년 안가서 파국을 맞게 되고, JP 자신은 물론 충청권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기고 말았다. 이와 같은 정치적 거래에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강했던 충청도 정서는 그후 부터 JP와 정치적 결별을 시작했다.

충청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사건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김대중·이인제 3파전이 전개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이회창후보와 이인제후보 모두 충청 출신이었고 특히 이인제후보는 신한국당 경선에 참여, 패배하자 승복하지 않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가 됨으로써 보수 진영의 분열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500만표나 많은 표를 얻었지만 승자는 김대중.

물론 JP이후에도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를 시도한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심대평 전 충남지사와 이회창 총재가 의기투합하여 출범시킨 자유선진당.

2008년 심 전지사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국민중심당을 자유선진당으로 흡수 합당까지 하였으나, '심대평 총리 기용설'에 이회창총재가 제동을 걸자 심대표는 이회창총재의 당 운영방식에 불만을 지적하고 탈당을 선언, 자유선진당은 바다에 떠 있는 종이배처럼 되고 말았다.

이렇듯 충청권의 약점은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인맥이 두텁지 못하고 정치자금면에서도 큰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도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등장은 충청인들에게 큰 기대를 모으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감동의 메시지 없이 충청인들 앞에 나타나'꽃가마'타기를 기다린 반총장은 충청인들을 크게 실망시켰고 결국 그는 낙마를 하고 말았다.

이처럼 충청권 이익을 대변하는'힘의 공백'이 계속되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등장은 기대를 모으는가 했는데 곧바로'불법선거자금수수'누명에 좌졀했다. 다행히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오명에서 벗어났으나 '못은 뽑아도 못자국은 남는다'는 말처럼 그 아픔은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올봄 '회오리 바람'처럼 불어닥친 '미투(Me Too)'운동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퇴진과 함께 검찰수사를 받게 되었다. 충격이다. 충청권을 이끌 정치인, 신선한 이미지와 도전 정신에 기대를 모았던 충청인들에게는 이번 성추문 사건이야 말로 실망을 넘어 가슴을 휑하게 뚫어 버리고 말았다.

계속되는 충청권의 정치 잔혹사(殘酷史)에 정치적 입장, 이념, 정당소속 여부를 초월, 누구든 허탈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야를 떠나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정신적 힘이요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속히 이 땅에 정치적 기운이 솟아 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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