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충북교육정보원 교사

꽃보다 설렘이 먼저 피어나는 봄, 해마다 처음처럼 설레는 봄이 살포시 왔다. 봄이 일깨우는 것들은 다 설렌다. 얼음 풀고 흘러가는 물소리, 조그맣게 올라오는 새순 연둣빛, 토실하게 차오르는 꽃망울.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삶까지 처음처럼 일깨우기에 해마다 새록새록 설렌다. 새 학기, 새 사람, 새 집, 첫 다짐, 첫 사랑…, 그 모든 '처음'에 대해 일깨운다. 그리고 '처음'은 대개 어리고 순수하고 희망찬 것들이기에 소중하고 애틋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 우리 직장에서는 작년에 신규 임용됐던 동료가 시보기간을 마쳤다. 공무원 시보제도는 시보기간 인사평가를 통해 면직이 가능하도록 법적 규제가 점점 강화돼 왔다. 역량과 자질을 시험하는 꼬리표 같은 것을 떼었으니 당사자에게는 참 다행스럽고 후련한 일이다. 그가 시보기간 동안 겪은 직장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종일 민원인을 응대하고, 정작 본업은 야간에 이뤄지기 일쑤이며, 고단함과 피로감 속에서도 변함없이 예의바름과 친절함을 다 하는 일, 살면서 처음 감당하기에 더욱 힘들고 벅찼을 것이다. 더구나 그 직장에 들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혹독한 수험생활을 생각하면, 치러야 할 대가는 많고 돌아오는 보상은 적기 마련인 얄궂은 인생살이와 마주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언제나 보여준 따뜻하고 밝은 태도는 분명 진정에서 우러난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참으로 고단하고 지루한 일상인데도 그 따뜻하고 밝은 마음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그건 그가 타고난 성품, 닦아온 인격에서도 오는 것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와 상사로부터도 오는 것이다. 시보공무원이 처음 겪는 일들을 같이 살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끌어주고 기다려 준 시간들이 한 사람을 좋은 직장인으로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타 시·도 이야기지만 유능하고 촉망받던 청년들이 공무원이나 법조계 등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들고 나서도 격무나 폭압적 문화를 못 이겨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세금 축내는 철밥통이라고 조롱하는 소리들도 높지만, 밤늦게 불 켜진 사무실마다 현재의 인력규모와 체제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업무가 끝없이 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고통은 자라나는 어린 세대 상당수의 미래이기에, 한 두 다리 건너면 서로 연결된 우리 가족이며 이웃의 일이기에, 우리 사회 직장문화를 선도하는 공공기관의 일이기에 방관해서도 안 되고, 개선을 멈추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인력규모나 업무체제를 고치는 일은 쉽지도 않고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루하루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우선 빠르게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마음을 여는 것이다. 소리 없이, 지체 없이 열린 마음의 문은 처음인 사람들을 바로 환하게 맞이할 수 있다. 우리도 처음이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따스한 공감과 든든한 배려를 아끼지 말자.

새순처럼 희망이 피어나는 봄, 시보를 뗀 우리 동료들을 축하한다. 그리고 그들이 멋지게 자리 잡기까지 봄볕처럼 따스하게 비추며 기다려 준 선배들을 존경한다. 모든 '처음'들을 소중하게 돌아보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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