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규 대전시 7대 명예시장(과학분야)

2002년 FIFA 월드컵이 아시아 최초로 이 땅과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렸다. 16강, 8강 그리고 4강까지 태극전사들의 투혼과 붉은 악마의 열띤 응원으로 하나가 되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 때 우리는 거리 곳곳의 ‘Dynamic Korea’라는 슬로건을 보며 "대~한민국"을 힘차게 외치며 모든 구성원들이 갈망하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함께 활기차게 전진하는 바로 그 ‘역동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젊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저출산, 정체되고 있는 경제성장과 이로 인한 높은 실업률, 계층·세대 갈등, 진보 보수의 충돌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등의 문제로 온 나라가 걱정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묘수를 찾아야 하지만 어디서부터 고리를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그해 3월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돌을 던지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와 닿았다. 컴퓨터는 프로기사를 이길 수 없다는 깊숙이 자리 잡힌 관념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부산해졌고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자율주행 자동차부터 드론, 인공지능, 블록체인까지 새로운 기술을 쏟아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도약은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마저 주고 있다. 중국의 경제특구 1호인 선전은 세계 1위 드론기업 DJI를 비롯하여 화웨이, 텐센트, BYD와 같은 세계적인 IT, 전기차업체가 둥지를 틀고 스마트시티, 인공지능 등 혁신적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다. 중국내 약 7만여 인공지능 전문가를 지휘하며 고유의 제조기술과 젊은 아이디어를 결합시켜 수많은 스타트업을 만들어 내고, 규제가 없는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야 말로 기술자, 연구자, 사업가, 관료가 하나 되어 만들어 내는 역동적 신세계 그 자체이다.

지금, 대전은 역동적인가? 대전은 과학기술분야 25개의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 절반이 넘는 13개의 연구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는 LG, SK, 한화 등 대기업 연구소, 한전, 한수원 등 에너지 공기업 연구원과 KAIST, UST, 충남대와 같은 의과학기술분야 전문교육기관 뿐만 아니라 충남대, 한남대, 대전대, 한밭대 같은 인문사회분야 교육기관 및 중소기업의 창업 및 성장을 연결하기 위한 대전테크노파크, 대전지방중소기업청 등이 있다. 고급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연간 7조 3000억여 원의 연구개발비가 집행되고, 석·박사급 인재 2만 6000여 명이 연구하고 있는 대전은 명실상부 교육의 도시이자 연구의 도시다. 전국 연구소기업의 44%인 185개 기업이 밀집해있다. 마음만 먹으면 기술혁신과 이를 통해 신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함으로써 도시 전체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만들 수 있는 인적, 기술적 자원 및 인프라를 충분히 갖고 있다.

대전 사람에게 4차 산업혁명은 각별하다. 대전시의 '4차 산업혁명 특별시' 선언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제 구슬을 꿰어야할 시기다. 대전의 훌륭한 인프라와 자원이 사회 역동성을 가져올 마지막 단계는 화학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요체는 더욱 융합해야만 찾을 수 있다. 경쟁 기관이나 경쟁 기업이라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넘어 서로 연결하고 개방하여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찾아야 할 때이다. 2002년 그 벅차고 역동적인 순간을 오늘날 대전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한국기계연구원 4차산업혁명R&D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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