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칼럼]
박봉주 가람문학회장


8살 아이가 한자를 배운다. 한자 선생님이 1주일에 한 번씩 다녀가시는데 아이는 학습지를 하루 만에 다 풀곤 했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는 ‘세금’을 한자로 쓸 줄 알아?'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깜짝 놀라며 아니, 이 아이가 한자를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세금’을 쓴다는 거지? 혹시 우리 아이에게 한자에 대한 놀라운 학습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그래? 그럼 한 번 써봐' 했더니 아이는 연필과 메모지를 가지고 오더니 자신 있다는 듯이 썼다. '金(쇠금)'...ㅎㅎㅎ. 아이는 '쇠금(金)'을 말한 것이고, 엄마는 '세금(稅金)'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이것을 유머의 워드플레이(Wordplay)라고 한다.

유머는 고정관념을 깨트리며 푸는 창의적인 과학이요,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인문학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요즘 강의 영역을 한자강의가 들어오면 한자 50% + 한자 관련 유머 50%, 문학강의가 들어오면 문학 50% + 문학 관련 유머 50%, 유머강의가 들어오면 유머 50% + 유머 관련 유머 50%‘이건 100% 유머인가?’ 등등 모든 영역에서 유머와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고문이나 연설문, 어디 가서 이야기 할 때도 이왕이면 들어서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그리고 사람의 귀를 고려해서 즐겁게 이야기 하려고 노력한다.

혹자는 우리 민족은 숱한 외침과 시달림 그리고 먹고 살기 어려워서 웃음경화증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웃으면 조롱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절망과 체념 속에서도 웃음꽃은 피어왔다. 웃음은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어 내는 힘이다. 우리 민족도 많은 역경 속에서 해학을 꽃피웠다. 건국신화인 곰 이야기는 악의가 아닌 우스꽝스러움과 외곬의 끈기 같은 것을 즐기고 있다. 신라시대 ‘처용가’도 분노나 눈물 대신 해학으로 작품화되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를 뒷받침하는 명언을 내놓았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선조는 이미 오래 전에 똑같은 말을 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으면 행복이 들어온다.' 더 나아가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로(一怒一老)라고도 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노하면 한 번 늙어진다'며 웃음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이 웃음의 원리를 파악했다면 웃음의 문화가 없다거나 웃음을 경시 또는 외면할 수가 없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나의 작은 경험과 소견으로 볼 때 '인생은 짧게 보면 유머(humor)요, 길게 보면 유우머(humour)'다. 다시 말해서 둘 다 유머인데 humor는 미국식 표기고, humour는 영국식 표기다. 웃음은 현재의 유통자본이다. 새해에는 유머 한 두 개씩 준비했다가 서로 나눔으로써 가정에 웃음꽃 만발한 정원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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