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김덕수 공주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현충사의 박정희 현판은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 났다. 문화재청의 고뇌 깊은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무신(武臣)이 하대(下待)받던 조선시대에 이순신을 올바로 평가한 인물은 숙종과 정조였다. 두 분은 조선에서 성공한 임금이란 공통점이 있다. 숙종은 충청도 유생 서후경의 상소(1704년)를 계기로 현충사를 건립(1706년)하고 '현충(顯忠)'이란 휘호(1707년)를 내렸다. 정조는 ‘이 충무공 전서’를 출간(1795년)했다.

박정희의 이순신 사랑은 두 임금 못지않게 각별했다. 그는 풍상우로(風霜雨露)로 초라해진 현충사를 지금처럼 장엄하게 현대화(1967년)시켰다. 현재 현충사관리소장직은 5급이지만 박정희 때는 중앙부처 1급 공무원이 맡았다. 박정희는 매년 '충무공 탄신제'를 주관했고 주요 전적지마다 비석을 세우며 각지의 이순신 사당까지 말끔하게 재정비했다. 또 현충사를 방문할 때는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떴고 콧노래까지 불렀다고 한다. 이는 청와대 1호 헬기를 오랫동안 조종했던 황백선 공군(예)중령(85세)께서 들려준 얘기다.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 1차 건설구간을 428㎞로 확정한 것도 이순신의 양력생일 4월 28일에서 차용한 것이다. 현충사의 금송도 왜군을 격퇴한 이순신처럼 자신도 경제부흥을 통해 일본을 꺾고야 말겠다는 와신상담의 발로였다. 이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의 대가로 일본에서 들여온 8억 달러를 포항종합제철소 건립자금으로 지원하면서 故 박태준 회장께 했던 말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우리 국민의 한(恨)이 서린 돈이다. 만약 포합종합체철소 건립에 실패한다면 모두 울산 앞바다에 빠져죽을 각오로 일하라." 이제 포합종합제철소는 세계 초일류기업인 포스코가 되었다. '박정희 현판을 떼라!'는 당신들은 이런 역사를 알고나 있는가?

박정희가 일본육사 출신이고 딸이 탄핵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행위는 가장 비(非)역사적인 태도다. 그의 친일여부와 정치적 공과(功過)는 훗날 사가(史家)들에 의해 평가될 문제다. 그런 작업을 위해서라도 박정희 현판과 그가 남긴 역사는 보존해야 한다. 이순신의 15대 종부가 진짜로 고민할 것은 박정희 현판의 폐기가 아니다. 그의 진짜 생일(1545년 음력 3월 8일)을 찾는 일이다. 그는 달(月)의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바다에서 조선을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또 조선시대에는 양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의 생일은 석가모니처럼 달력에다 음력으로 표기하고 기억해야 한다. 또 100원짜리와 5원짜리 동전에 있는 이순신과 거북선을 최소한 1000원권 이상의 지폐에 넣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어째서 구국의 명장(名將) 이순신과 거북선이 500원짜리 동전과 화투 삥 광에 들어있는 학(鶴)의 1/5이고, 1/100수준인가? 이것이 제대로 된 역사이고 정의인지 되묻고 싶다.

이제껏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삽질 한번 하지 않고, 역사 조작에 기초한 김일성 우상주의를 맹신하며 국가안보를 위기국면으로 몰아가는 주사파와 친북좌파들보다 박정희의 영혼이 훨씬 더 순수하고 애국적이다. 그러니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으로 박정희의 흔적 지우기를 획책하는 치졸한 작태를 즉각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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