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파문, 사실파악 전 자진출두 ‘이례적’
대응전략 로드맵 수립 예상, 추측성 기사 진정효과 노린듯
‘강압적·합의’여부 언급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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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정무비서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9일 오후 5시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해 9시간의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안 전 지사의 이날 출석은 검찰이 부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진해 나온 이른바 ‘셀프 소환’이었다. 같은 시각 피해자인 김지은 씨도 서부지검의 같은 건물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이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가해자가 검찰에게 먼저 가해 사실을 조사하라고 검찰에 요구한 셈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는 입장이며, 정치권 등에선 안 전 지사가 법적·정치적 대응전략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것 아니냐라는 시선을 보낸다.

정무비서 김지은 씨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지난 5일 이후 안 전 지사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9일 오후 5시 서울서부지검에서였다. 잠적 93시간만이었다. 점퍼차림의 안 전 지사는 서부지검에 들어가면서 국민과 도민, 가족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피해자인 김지은 씨와 관련된 말은 전혀 없었다.

안 전 지사는 다음날인 10일 오전 2시30분까지 9시간 30분가량 조사를 받았다. 귀가를 위해 서부지검을 빠져 나올 때는 김지은 씨에 대한 말을 했다. 안 전 지사는 기자들에게 “나를 지지하고 나를 위해 열심히 했던 내 참모였다”라며 “미안하다. 그 마음의 상실감과 배신감, 다 미안하다”고 했다. 혐의를 인정하는지에 대해선 “앞으로 검찰 수사와 진행 과정에서 계속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만 했다. 법적 다툼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김지은 씨는 이날 오전 9시30분에 피해자 조사를 마치고 서부지검 건물을 빠져 나갔다. 결국, 피해자는 23시간 30분을 조사받고, 피의자는 9시간 30분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이례적인 사례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법적·정치적 로드맵에 따라 치밀하게 짜인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성문 변호사는 안 전 지사의 셀프 검찰 출석에 대해 “가해자가 (검찰의 소환이 없는데)갑작스럽게 자진해서 출두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임 변호사는 “검찰 측이 피해자 진술을 다 듣기도 전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출석했기 때문에 일단 안 전 지사의 진술을 들어줬을 것으로 보이고 추후 재소환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가만히 있으면 향후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변명으로만 비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못하게 되는 상황을 (안 전 지사는) 우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기에 조사를 받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했을 것으로 보이고 이제 수사가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자 인터뷰만 갖고 쏟아지던 추측성 기사도 어느 정도 진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안 전 지사가 조사를 받고 나온 이후 김지은 씨에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었다”라며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씨와의 관계가 강압적이었는지, 합의에 의한 것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안 전 지사는 강제성 여부에 대해선 법적으로 다투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것 같다”라며 “안 전 지사는 여전히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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