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용 보은경찰서 경무계

인간은 강요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굴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1800년대 프랑스의 유명 정치가 콩시데랑이 한 말이다. 적어도 여기에는 틀린 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본인의 야욕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더 나아가 사회까지 황폐화 시키고 있다.

폭력으로 누군가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과도 같다. 이로 인해 우리는 폭력을 싫어하고, 진정으로 우리를 이끌어주고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다. 이 같은 고귀한 정의와 가치가 이 땅의 모든 곳에 뿌리내리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현실은 이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의 적용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의 교실 환경에서는 그 색채가 더욱 짙어 보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7년 3월부터 4월까지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를 통해 하루 평균 248건의 상담 및 사건이 접수되었고, 이는 동년 1월~2월 대비 148% 급증한 수치다.

신학기인 3월은 학생 간 서열이 형성하는 시기로 학교폭력의 발생이 어느 때보다 더욱 많은 이유이다. 이로 인해 경찰에서도 3~4월을 학교폭력 집중 관리기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교육을 이수한 정예화된 학교전담경찰관 및 수사팀을 항시 운용중이다. 이를 통해 신학기 학교폭력의 불씨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문화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노력과 반비례해 아직까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학교폭력의 사실을 알면서도 이른바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일컬어지는 방관자를 자처하고 있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도울 거란 책임감이 결핍된 잘못된 확신과, 자신까지 새로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막연한 걱정과 불안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 같은 행동은 법조문에 나와 있지 않았을 뿐 실질적인 가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본인이 지나온 방관자로서의 발자취와 흔적은 정작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폭력 그 자체 뿐 만 아니라, 혼자라는 상실감으로 그 충격은 배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 및 신고어플 117 CAHT 등을 통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생각의 전환과 그에 부합하는 능동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폭력은 무능력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일 뿐이다. 폭력으로 잠시 그를 따를 수는 있겠지만 마음까지 따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방법은 친절한 설득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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