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전 청암학교장

'선생이 별거니?'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낸 지 2년이 넘었다. 이 제목은 2004년에 개봉된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에 나오는 대사다.

처녀 여선생이 잘 생긴 총각 선생을 사이에 두고 조숙한 여 제자와 갈등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교직생활에 회의를 느낀 여선생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선생 관둘까?" 딸은 심각하게 묻는데 엄마의 대답은 그저 시큰둥하다. "선생이 별거니? 뒷사람들 본보기 되게 잘 살면 그게 다 선생인 거지!"

이 대사에서 따온 책 제목을 두고 교직에 있는 어느 성질 급한 선배가 나를 앞에 두고 질러 댄다. "제목이 이게 뭐여? 그럼 선생이 별게 아니란 말여?" 책을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소주 몇 잔 하고 질러대는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선생이 별거니?'를 펴낸 지 얼마 안 되어 마치 소설처럼(?) 나는 선생이라는 외도의 길을 걷게 됐다. 그것도 잔소리 많고 말 길게 하는 교장선생이다.

평생을 교실 밖에서 서성대기만 하다가 막상 교실 안에서 교장으로 지낸 2년 반 만에 내린 결론이 있다. 그건 이 제목에 이의를 단 선배가 시비를 건 것과는 달리 선생은 '별게 아닌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2015년 9월에 부임한 학교는 정신지체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부임한 지 한 달이 되기 전에 교내 씨름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학교는 온통 축제 무드였다. 장애 아이들에게도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다. 경기에서 이긴 아이가 상 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상을 받고 싶은 욕심도 있다. 우승한 씨름 장사에게는 선생님들이 꽃가마를 태워 준다. 물론 교장이 상도 준다.

축하의 박수와 환호가 넘치는 가운데 운동장 한편에 시무룩한 아이가 있었다. 경기 전에는 웃통을 벗어던지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를 만큼 패기가 넘치던 아이였다. 그러나 예선에 지고 난 뒤 그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씨름대회가 끝날 때까지 풀이 죽어 있다가 나중에는 철철 울기까지 했다. 그렇게 씨름대회는 끝났다.

그리고 얼마 쯤 지났을까, 그 아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교장실에 들어왔다.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의기소침해 있던 아이가 교장에게 내민 것은 바로 담임 선생님이 발행한 상장이었다. 그것도 담임 선생님 이름에 네모 모양의 '직인'까지 찍힌 상장이었다. 그 아이는 그 상장을 받고 자랑을 하러 교장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날 난 선생이 별게 아닌 게 아님을 분명히 확인했다. 아이들마다 갖고 있는 개별 특성을 파악하여 상황에 따라 교육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그들에겐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말도 있지만 선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돈 많은 재벌도 시골 촌부도, 내 아이를 직접 가르치진 못한다. 좀 배웠다는 학부모들이 선생을 우습게 아는 풍토는 너무 짧은 기간에 좀 살만 하게 된 이 나라에 생긴 심각한 부작용이다. 말단 공직들이 삐치면 대통령의 힘은 저절로 빠지고, 교사들의 사기가 죽으면 교육감이나 교장이 주장하는 행복학교는 만들어질 수 없다.

책 제목을 정하면서 혹시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끌어볼까 하고 빌려 썼던 '선생이 별거니?'란 말에 뿔났던 선배에게 한 마디 하겠다.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상대방에게 일단 퍼부어대는 그런 정상배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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