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평창 올림픽은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던 결과지상주의가 약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금메달 숫자로 대표되는 최종 결과 못지않게 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중요시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고 응원한 것은 당연하지만, 금메달이 아니어도, 때로는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금메달 이상의 갈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화 선수의 빙속 1000m 은메달과 여자 컬링대표팀의 은메달에 금메달 이상의 환호와 축하를 보냈고, 쇼트트랙 선수들이 경기 중 넘어져서 메달권에 들지 못할 때도, 메달권에서 먼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최선을 다한 경기가 끝날 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는 결과지상주의, 목표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에 끼쳐온 폐해를 고려할 때 매우 바람직한 변화이다.

경우가 다르지만 2016년 9월 12 일 경주지진 후 ‘결과와 과정’ 또는 ‘목적과 수단’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지진 이후 갑자기 등장한 전문가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여러 안전대책들을 내놓을 때였다.

지진 안전성 향상이라는 목적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숭고한 목적이 대책의 타당성을 언제나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올림픽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의 모습은 사회현안들을 대하는 태도도 변화할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목적이나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기대하는 결과와 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절차는 모두 중요하다. 우선 목적이나 목표가 올바로 설정되어야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과정도 정당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논란이 있는 사안들 중에 안전이나 삶의 질 등 궁극적인 목적에는 이견이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때는 아무래도 수단과 과정의 정당성이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어떤 이가 숭고한 목적이나 대단한 목표와 결과를 말하더라도 현 시점에서는 진실성이나 달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나 기대일 뿐이지만, 수단과 과정의 정당성과 합리성은 이행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확인할 수 없는 목적이나 결과에 대한 기대를 근거로 옳지 못한 수단과 과정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된다. 나찌를 비롯한 독재자들과 사익을 추구하던 사이비 교주들도 모두 그럴듯한 목적과 목표, 달콤한 결과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숭고한 목적과 결과에 압도되어 부당한 수단과 과정을 조금씩 묵인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한 경우를 역사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사회적 이슈들에 목소리를 내는 인사들을 대할 때 그분들이 말하는 명분이나 목적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따르고 있는지,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와 입장이 다르더라도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일관성을 보이는 분은 존중하고 신뢰한다. 반면, 사실을 왜곡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자주 바꾸는 분, 자신의 본업은 엉터리로 하는 분, 자신은 못하는 일을 남에게는 강요하는 분은 신뢰하지 않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미빛 공약들이 미디어를 달구고 있다. 누가 당선되어도 우리나라가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제 목표 못지않게 과정과 수단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진실성 없는 공약에는 잘 속지 않으며, 그들이 살아온 길과 진실성, 선거 운동하는 방식을 더 눈여겨 볼 것이다. 지금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온 분들이 더 많이 후보자로 나서고, 이분들이 많이 당선되어 우리가 더 좋은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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