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원전 번역해 첫 출간

러시아인의 기이함 사랑한 막심 고리키 산문집 '가난한 사람들'

러시아어 원전 번역해 첫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어머니'로 유명한 러시아 문호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세계관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산문집 '가난한 사람들'(민음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고리키가 스탈린 체제와 불화를 겪고 유럽을 떠돌던 때인 1924년 펴낸 '일기로부터의 단상. 회고'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바탕으로 한다. 고리키는 그 전해에 독일 베를린에서 해외 거주 러시아 작가들의 글을 모아 잡지 '대화'를 발간하고 '단상', '일기로부터'라는 제목 아래 여러 편의 산문을 실었는데, 여기에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 28편의 글을 모아 책을 엮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기서 22편을 뽑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원전인 '일기로부터의 단상. 회고'는 한국에서 1980년대 영역본을 번역한 책이 출간된 적이 있으나 곧 절판됐다. 러시아어 원전을 그대로 번역해 출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고리키의 산문들은 그가 러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에 관해 쓴 것이다. 돈이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민초, 이웃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가 않다. 기이한 행동, 현실에서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사건들과 연결돼 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 관해 쓴 글들은 일반적인 산문이라기보다는 판타지와 상상이 결합된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읽힌다.

'여자 마법사'란 제목의 글은 어느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이바니하'라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여인은 걷지 못하는 처녀를 갑자기 걷게 만들고, 죽어가는 남자아이를 살려내는 등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로 알려져 있다. 이 여자 마법사는 곰을 때려잡은 산림지기이기도 하다.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생각은 놀라우리만치 철학적이다. 진실이 믿음보다 위에 있으며, 신은 믿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진실에 다다를 수 있도록 안내하는 목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기도를 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해 이렇게 꾸짖는다.

"그리스도여? 사람들을 보살피기나 하는 겁니까, 예? 여기 저는 여자이지만 사람들을 보살핍니다. 당신네 사람들도 보살피고, 타타르 사람들이나 추바시 사람들도 보살핍니다. 제게는 모두 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어요? 당신의 사제들은 당신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있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당신네 사람들조차 사랑하지 않습니다, 않아요!" (77쪽)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오관기 번역가는 스탈린의 러시아가 고리키를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작가'라든가 '레닌의 흔들림 없는 친구' 등으로 과장되게 미화해 체제 선전 도구로 삼았고 한국 독자 대부분이 이렇게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고리키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감, 다양한 개성과 가능성을 지닌 러시아 민중을 깊이 사랑한 인본주의자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그가 20세기의 혁명 사상과 인간 개조와 역사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믿음의 열렬하고 헌신적인 지지자였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을 진보를 위한 소모품이나 도구가 아니라, 너무 풍요롭고 기이해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내면을 가진 복잡한 존재로서 늘 그의 가슴에 두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또 고리키가 본 동시대 작가 톨스토이, 체호프 등에 관한 이야기와 레닌이 죽은 뒤 쓴 인물평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360쪽. 1만6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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