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기고]
가명현 전 온빛초등학교 교장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이상과 가치는 교육개혁의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수요자의 욕망 앞에 교육개혁에 대한 이상이 제자리를 맴돌거나 '대입'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후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낡은 잣대로 교육을 재단해서는 뒷걸음만 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낡은 잣대로 세종시 학생의 학력을 도마 위에 올리고 있어 얼마 전까지 학교 현장에서 교장으로 있던 나로서는 매우 답답한 심정이다. 세종시 학생의 학력이 전국 최하위 수준이라 학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고교평준화와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초등학교 일제평가 폐지를 꼽으며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고교평준화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세종시 학생의 학력이 전국 최하위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나 대입 수학능력시험 결과를 근거로 끄집어 낸 결론이라면 잘못 분석한 것이다. 그러한 평가가 미래 역량을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그 평가 결과로 세종시 학생 학력을 최하위로 규정하거나 고교평준화와 학교혁신 정책이 문제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중학교는 보통학력 이상의 비율이나 기초학력 미달 비율 모두 세종시 출범 이전 최하위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6년에 전국 평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고등학교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신설도시의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대규모 입주에 따라 전입생이 많은 신설학교에서 기초학력미달율이 기존 학교의 2배에 이른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도 최하위라 할 수 없다. 2017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를 보면 평균은 낮으나 1-2등급 비율, 최저점, 표준편차는 나쁘지 않다. 수능 응시학교 8개교 중 3개교가 특성화고인 점을 감안하면 우려할 일이 아니다. 2018년 대입 수시 결과를 보면 이른바 명문대 합격도 증가했지만 지방 국·공립대 합격자도 상당히 증가하였다. 세종시 고등학교들의 교육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학교 담장을 넘어서 학생들의 진로 적성에 맞는 다양한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캠퍼스형공동교육과정이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교평준화는 세종교육의 기반을 만드는 핵심 정책이다. 고교평준화가 지역 전체의 학력을 높인다는 것도 여러 가지 통계와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렇기에 압도적 다수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행한 일이다. 이를 되돌리겠다는 발상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혁신 교육은 이미 큰 흐름이 되었다. 경쟁이 아니라 한 학생 한 학생의 꿈과 배움을 중시하는 교육, 지식 중심의 학력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역량을 기르는 교육, 개인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되는 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삶을 가꾸는 교육으로 물길이 바뀌었다. 이 흐름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2015교육과정, 자유학기제도 그 흐름 속에 있으며 대입도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학생들의 선택권과 자기주도성을 중시하는 고교학점제 도입도 예고되고 있다. 굳이 4차산업혁명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미 눈앞에 닥쳐온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의 큰 틀이 바뀌고 있다.

이미 수명을 다한 산업화 시대의 낡은 잣대로 학력, 고교평준화 폐지 운운할 때가 아니다. 학생들의 배움을 좁은 교과서와 시험 점수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한 가운데 꿈을 키우고 배움이 일어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가 마음속에 자리매김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 갈 힘을 제대로 기르게 하여야 한다. 이는 교육청과 학교의 힘만으로 부족하다. 세종시 전체가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협력하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세종시의 훌륭한 자원과 행정 수도로서의 위상을 활용하여 새로운 교육의 꽃을 피워 대학입시를 넘어서 대한민국 교육을 바꾸는 일을 꿈꿀 때다. 터무니없는 주장을 이해관계에 따라 확대 재생산하여 교육현장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에게 오해와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을 그만두고 미래로 나가는 길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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