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
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이름이 제법 긴 충북행복교육지구 사업이 2년 차를 맞았다. 기대가 큰 만큼 내실 있는 사업 추진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 왜 이 일을 하는지 한 번쯤 되물었으면 좋겠다.

행복교육지구 사업은 다른 시·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충북도교육청 버전이다. 하지만 충북의 행복교육지구사업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광역 지방자치단체 산하 모든 시·군에서 추진된다는 점은 전국적인 사례가 없다. 도민이 거는 관심과 기대, 열의가 드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행복교육지구사업은 교육청·지자체·지역사회가 협력해 지역 특색에 맞는 교육을 통해 지역 전체의 교육력을 높이자는 사업이다. 지역을 아이들의 큰 배움터로 만들고, 지역을 교육의 내용으로 삼으며, 지역 자원을 학교의 자원이 되도록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지역인을 교육의 주체로 세우는 사업이다.

돌이켜보면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마치 '소도'처럼 존재했다. 눈으로 보이는 학교 울타리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담장이 더 높았다. 교육은 오로지 학교와 그 학교를 감독하고 지시하는 교육청의 몫이었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이 어찌 학교와 교육청만의 몫이랴.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모아야 우리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울 수 있다. '마을은 아이를 품고 아이가 자라서 마을을 품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교육지구 사업은 지역을 아이들 삶과 결합함으로써 삶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기르는 데 의의가 있다. 자신이 사는 곳과 자신이 직접 관계하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존재 배반의 교육은 벗어나야 한다. 삶의 터전과 관계 맺는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삶을 세워나가는 교육, 존재를 살리는 교육을 지향해야 함은 물론이다.

문맹퇴치교육으로 이름높은 파울로 프레이리는 삶을 배반하는 교육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테면 아침마다 도시락을 들고 농장이나 공장으로 일하러 가는 부모들보다는 도시 중산층의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담은 교과서로 가르치는 학교교육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교육이 아이들을 삶과 동떨어진 은행적금식 지식교육의 희생자로 만들고, 자신의 삶을 배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히려 프레이리는 문맹자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말들과 생각을 이용해 교육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임을 밝히고, 삶과 밀착된 교육 과정 속에서 학습자가 스스로 사회적, 정치적 자각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설파했다.

프레이리의 실천은 '행복교육지구 사업, 왜 하는 거지?'라는 질문에 답할 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기실 우리나라 교육은 지난 시기 자기 삶을 무시하고 외부의 지식을 잔뜩 주입해 스스로의 삶을 등지도록 하는 데 몰두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삶의 터전인 지역과 호흡하며, 주민과의 관계망 속에서 자기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탄탄하게 세워가도록 가르치지 못했던 것도 분명 성찰해 봐야할 우리 교육의 한계 지점 중 하나다.

아이들은 자기 가족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과 지역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고, 마을과 지역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 자아가 튼튼한 사람이 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