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박병희 충남도 농정국장

농산물 가격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또 없다. 30년 넘게 농사를 지어 하늘만 봐도 언제 비가 올지를 알고, 정식하면서 수확 날짜를 딱딱 점치는 베테랑들도 시장 앞에서는 맥을 못 추니, 알다가도 모를 것이 농산물 시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떤 지자체는 최저가격 보장을 위한 조례를 만들고 일부 농업인들은 농업인 월급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최저가격 보장과 농업인 월급제는 농업인들의 소득불안정은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으나 동시에 만성적인 생산과잉을 야기한다. 농산물 수급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최저가격 보장과 농업인 월급제의 도입은 임시방편이며 끊임없는 재정투입만 야기할 뿐이다.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채소류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급량의 변화다. 공급량의 변화는 농업인들의 생산계획량과 기후요건이다. 생산계획은 전년도 생산통계와 가격에 영향을 받고, 기후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보니 전량 계약재배, 시설재배가 아닌 이상 사전적 생산량 조절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생산 이후의 출하를 조절하기 위해 작년부터 시행한 것이 채소가격안정제다. 가격안정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30%, 농협, 농업인이 각각 20%씩 부담하며, 기준 이하로 가격이 떨어졌을 때, 평년 가격의 80%를 보전해주되, 농업인은 출하명령에 따라 계약물량의 시장출하의무를 이행해야한다. 이 사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시장에 영향을 줄만큼의 물량이 확보돼야 한다. 전국으로 보았을 때 작년은 생산량의 8%를 확보했으며 점차 물량을 늘려 오는 2022년에는 30%까지 계약물량을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충남도는 작년 한해 봄배추와 가을배추에 대해 생산안정제를 시행했고, 도 생산량의 7.5%를 계약했다. 많은 물량은 아니었지만 시장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출하를 조절,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배추가격을 지지하고, 가을배추는 평년 수준으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 가격안정제는 가격이 상승할 때도 작동한다. 지나친 상승작용이 있을 때 조기출하를 통해 공급량을 늘려 가격상승세를 약화시킨다. 급격한 상승과 하락을 막음으로써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안정적인 가계지출과 생산계획이 가능해진다.

어떤 농업인들은 보조금을 주고 평년의 80%가격을 보장해준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있다 출하하면 값을 배로 받을 텐데 출하해야 하기 때문에 뭔지 모를 손해 보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시장을 안정시켜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지금과 똑같이 시장의 변덕에 휘둘리는 수밖에 없다. 결국 농업인 스스로가 시장을 주도한다는 주체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한 명 한 명이 모이고, 10%, 15%가 모여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시장 가격도, 농업소득도, 길게는 향후 생산도 같이 안정시킬 수 있다.

당장 2월 중순이면 시설봄배추 재배가 시작될 것이고, 곧이어 주산지 협의체가 구성될 것이다. 용기 있는 농업인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농협이 적극 지원할 것이다. 쉽지 않은 길에 농업인 여러분들의 이름이 함께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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