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춘향전'의 줄거리를 모두 알고 있는데 계속 영화며 연극, 뮤지컬 등으로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숙한 이야기지만 새롭게 해석을 가미하고 그 시대 분위기와 관심사를 담아낸다면 문자 그대로 불후(不朽)의 텍스트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작'의 권위와 생명력이 거기 있다. 그러나 작품 이름과 줄거리, 주인공 그리고 교훈 등은 꿰고 있지만 정작 작품 자체를 꼼꼼하게 읽는 경우는 드물다. '읽히지 않는 명작'의 운명이 여기 있다.

굳이 멀리 올라갈 것도 없이 1940년대 초반 발표된 오영진 선생의 '맹진사댁 경사'('시집가는 날')도 이제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듯 하다. 당초 영화 시나리오로 쓰여졌으나 그 뒤 2막 5장 희곡으로 개작되어 70여 년 간 꾸준히 영화와 연극, 뮤지컬, 창극, 마당놀이 등으로 선보이고 있다. 담고 있는 메시지와 작가정신, 시사점은 세월의 격차를 넘어선다. 권선징악을 화두로 가문의식의 허구성, 신분 상승 욕구, 구습 결혼제도의 모순, 계급사회의 비인간성 그리고 금전만능 사조를 질타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질펀한 해학과 웃음, 절묘한 반전을 통해 펼쳐진다. 인물 성격 역시 개별 작품의 차원을 넘어 전형적인 인간형을 그려내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특징적인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다.

이 작품을 연극, 영상, 국악, 무용, 마당놀이, 뮤지컬 등 여러 공연예술 요소를 접목한 총체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우리 전통문화에 현대성을 가미한 대표 문화콘텐츠 상설공연으로 내, 외국인 모두에게 선보였으면 한다.

(사)한국생활연극협회(이사장 정중헌)가 창립기념으로 최근 공연<사진>하기도 했는데 연일 만석을 이루면서 21세기 버전 '맹진사댁 경사'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전문배우가 아닌 직장인들이 퇴근 후 모여 열정적으로 연습한 결과였다. 프랑스에서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라는 한 작품을 한 극장에서 60여년 공연하여 이제는 문화상품, 문화명소로 자리 잡았다. 난해한 현대희곡도 이러할진대 인간보편의 정서를 담은 '맹진사댁 경사'의 가능성은 한층 커보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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