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민 교수 '범죄소설의 계보학'서 계급·성차별 등 이데올로기 분석

▲ [계정민 교수 제공=연합뉴스]
▲ [계정민 교수 제공=연합뉴스]
"셜록 홈스는 왜 매력적인 귀족 백인 남성일까요?"

계정민 교수 '범죄소설의 계보학'서 계급·성차별 등 이데올로기 분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셜록 홈스는 귀족적인 백인 남성에 굉장히 인상적인 남성성을 전시하는 인물입니다. 얼굴이 잘생기고 육체적인 능력도 뛰어나고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예술적인 문화 자본도 갖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악독한 범죄자는 추하고 형편없게 그려지죠. 추리소설은 이런 구도로 범죄를 응징하는 지배계급의 통제를 정당화합니다."

신간 '범죄소설의 계보학'(소나무)을 낸 계정민(55) 계명대 영문과 교수는 2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영미권의 범죄소설이 역사적으로 담은 함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접하게 된 범죄소설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범죄소설에 문학적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범죄소설이 젠더·계급·인종·민족에 관해 전선이 형성돼 부딪혔던 전장이며 그 예민한 지점을 다루는 당대 문학의 요충지, 뛰어난 텍스트"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범죄소설의 계보를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영국에서 인기를 끈 '뉴게이트 소설'과 19세기 후반 영국 범죄소설의 주류가 된 '추리소설', 1920년대 초반 미국에 등장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로 분류한다.

"뉴게이트 소설은 '진짜 범죄'가 사회적인 권위를 지닌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고 그런 권위가 없는 피지배계층은 당대 법률·경제 제도의 피해자라는 굉장히 급진적인 시각을 담고 있어요. 이런 소설이 연극 무대에까지 오르면서 문맹인 노동계급이 환호했고, 문화적 현상이 되면서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이 체제를 엎을 거란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권력이 개입해 출판금지 등 탄압을 했어요. 그러면서 지배계급이 대응한 게 추리소설 띄우기입니다. 추리소설의 탐정은 귀족적 상류계급의 표상이에요. 셜록 홈스처럼요. 반면 범죄자들은 인도 같은 식민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탐정은 유색 인종처럼 주술이나 미신, 잔인한 방법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사용해 사건을 해결하며 인종적 우월성도 드러냅니다."

이런 추리소설에 뒤이어 나온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그동안 "폭력적 요소와 성적 자극을 추가해 상업성을 극대화한 고전추리소설의 저속한 아류로 평가"됐으나, 그 문학사적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1920년대 미국에서 나온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지금 우리가 일컫는 '헬조선'과 비슷한 '헬아메리카'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노동계급 남성의 분노와 울분을 담았어요. 지배계급인 자본가, 경찰, 언론 권력이 진정한 범죄자이고 이들이 미국을 '헬아메리카'로 만들었다는 적대감이 어마어마해요. 그런데 그 응징과 처벌의 대상은 적개심의 대상인 자본가 계급이 아니라 '팜파탈'로, 이들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성주의자들은 팜파탈의 위험한 섹슈얼리티에 집중하거나 팜파탈의 젠더적 저항에 초점을 맞추지만, 실은 성적인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남성과 같이 경제적 능력, 자본 증식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자본가 계급과 유사한 이미지로 그려지죠. 하드보일드는 이렇게 마지막에 치사하게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지배계급과 협상합니다."

범죄소설이 품은 젠더 이데올로기에 관한 분석도 흥미롭다. 추리소설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여성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남성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흡수되지 못해 결국 다 사라지고, '무성성'의 존재인 '노처녀 탐정 소설'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가 그 대표 격이다.

"여성 탐정 추리소설은 지배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와 타협하려고 여러 가지를 모색했어요. 사명감 없이 생활이 절박해서 일한다든지 남편이 중병에 걸렸다든지, 남성 탐정을 순종적으로 보조하는 선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도 여성 탐정은 사라졌어요. 그러나 노처녀 탐정은 살아남았습니다. 한국만 해도 1980년대에 여성은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분위기였는데, 할머니들은 자유롭게 담배를 피웠잖아요. 나이 든 여성이 갖는 무성성 때문이죠. 게다가 노처녀는 결혼 제도 바깥에 있거든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존재라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본 거죠. 이런 노처녀 탐정들은 젠더에 관해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요. '미스 마플'은 소설 속에서 직접 말합니다. '예전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요. 이런 내용으로 권력의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거죠."

이런 분석에 셜록 홈스나 미스 마플 시리즈 팬이라면 반박할 수 있을 듯하다. 재미있는 소설이어서 살아남은 것이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뉴게이트 소설의 경우에는 굉장히 인기가 있었는데도 권력이 이것을 연극 무대에 올리는 걸 금지한다든지, 제대로 노출되지 못하도록 하면서 점점 사라졌어요. 이것은 대중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거랑 다르죠. 스코틀랜드 출신인 코넌 도일은 나중에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아요. 인기 소설을 썼다고 작위를 받는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그는 영국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글도 굉장히 많이 썼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역시 작위를 받았죠."

그렇다면 우리는 범죄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단순히 재미와 반전, 트릭을 소비하는 독서도 가능하지만, 그 안쪽에서 다루는 엄청나게 첨예한 내용, 다양한 층위를 알고 읽는다면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겠죠. 깊숙이 보면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범죄소설이 기존 체제, 지배 이데올로기와 영합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따라 조금씩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비판적인 읽기는 계속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미국 드라마 'CSI'를 보면 남미계, 레즈비언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와 수사를 합니다. 체제 전복까진 아니지만, 진전이라고 할 수 있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에는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의 여성 해커가 주인공으로 나와 사건을 해결하는데, 계급적인 면에서는 하드보일드와 흡사하지만,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혐오를 뒤집었죠. 이번 책에서는 분량이 넘쳐 다루지 못했지만, 다음엔 섹슈얼리티 문제도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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